불꽃 같은 삶을 살고 무지개 너머로 가버린 '영원한 도로시'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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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10일, 주디 갈런드가 태어났다.
배우, 가수, 댄서로 활약하며 할리우드의 한 세대를 풍미했던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난 주디 갈런드는 본명이 프랜시스 에셀 검이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에도 주디 갈런드는 어릴 적부터 끊임없는 압박과 갈등 속에서 고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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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22년 6월 10일, 주디 갈런드가 태어났다. 배우, 가수, 댄서로 활약하며 할리우드의 한 세대를 풍미했던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난 주디 갈런드는 본명이 프랜시스 에셀 검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이자 배우인 부모님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재능을 보였다. 특히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3살 때부터 언니들과 함께 '검 시스터스'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다.
1935년에는 MGM과 계약하며 본격적인 영화 활동을 시작했다. 1939년 뮤지컬 판타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 역은 그의 '인생 배역'이 됐다. 순수하고 밝은 모습을 표현한 도로시 역은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고, 주제곡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는 그의 대표곡이 됐으며, 아카데미 아역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에도 주디 갈런드는 어릴 적부터 끊임없는 압박과 갈등 속에서 고통받았다. 엄격하고 과도한 스케줄, 개인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갔다.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데이비드 로즈와 결혼한 이후 4번의 이혼을 겪었다. 약물 남용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건강도 나빠졌다.
어려움 속에서도 주디 갈런드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꾸준히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 '스타탄생' 등 여러 뮤지컬 영화에서 명연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또한, 가수로서도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1969년 6월 22일, 주디 갈런드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해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97년 미국 음반 예술 산업 아카데미는 주디 갈런드에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여하고 그의 노래 몇 곡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정했다. 1999년에는 미국 영화 협회가 선정한 미국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대 여성 스타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렸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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