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감정 속 숨은 진실 찾아라…‘한국형 진술분석 기법’ 개발한 최규환 프로파일러
“진술분석과 경찰 수사 결과 일치해”
지난달 24일 오후 충남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최규환(43) 경위가 경찰인재개발원 안병하홀에서 열린 한국CSI(과학수사)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자로 나섰다. 발표 주제는 그가 직접 개발해 연구하고 있는 ‘한국형 진술신빙성 평가 모델’(K-SCAM)이었다.
최 경위와 지난달 31일 충남경찰청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2007년 범죄분석요원 2기로 경찰에 채용됐다. 형사로 근무한 1년가량을 제외하면 범죄심리와 행동을 분석하는 프로파일러로 쭉 일했다.
프로파일러는 원래 연쇄살인범의 연령대, 특징 등을 추정·분석하는 게 주 업무였다. 폐쇄회로(CC)TV의 보급과 추적수사 기법 발달로 범인이 누구인지 빠르게 특정할 수 있게 되면서 프로파일러는 범행 동기, 재범 위험성 등을 평가하거나 진술 신빙성을 측정하는 업무를 주로 맡게 됐다.
최 경위는 특히 진술분석에 관심을 가졌다. 숨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일과는 달랐지만, 진술 속에 숨은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일은 프로파일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진술분석은 피의자나 피해자의 진술을 감정의 동요 없이 냉철하게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지만 불편하다고 질문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진술분석에 나선 프로파일러는 상담가가 아닌 진술의 평가자이기 때문이다.
“진술분석을 하면 워낙 끔찍한 일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당사자들의 진술을 세밀하고 비판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공감을 멀리하는 훈련도 해요. 인간적인 공감 대신 사건 실체를 밝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국내 진술분석가들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여러 진술분석 기법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자필진술서가 필요하다거나 피해자 혹은 피의자 한쪽의 진술분석에 특화되거나 하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 최 경위는 불분명한 기준으로 진술분석이 이뤄지면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둘러싼 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K-SCAM을 연구한 건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K-SCAM은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법원이 진술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참조해 사법절차에서 활용성을 높였다. 또 분석을 의뢰하고, 평가한 뒤 회신하는 절차를 표준화해 법정에서 필요한 증거 능력이 확보되도록 했다.
절차는 이렇다. 수사관의 의뢰를 받은 프로파일러는 피해자와 피의자를 면담한다. 이어 진술의 구조와 내용을 평가한다. 평가에는 다양한 기준을 사용한다. 예컨대 자신이 직접 볼 수 없었던 상황을 경험한 것처럼 표현하는 진술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화장실 안에 혼자 있었던 피해자가 한 행동을 피의자가 직접 본 것처럼 진술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이 상황에 부합하는 진술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무섭고 혐오스러운 피해 상황을 이야기할 때 당시 느낀 구체적인 감정까지 표현하는 식이다.
최 경위는 4년 정도 이 기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2022년 학술지 <치안정책연구>에 ‘한국형 진술 신빙성 평가 모델(K-SCAM) 제안 및 타당성 검증’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성과를 처음 알렸다. 지난 2년 동안은 진술분석한 사건들이 법정에서 어떤 결과를 내는지 지켜보면서 검증하는 시간도 보냈다.
최 경위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와 재판의 결과가 K-SCAM의 진술분석 결과와 큰 일치율을 보였다. 성범죄 사건 약 100건 중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가 거짓말했다고 평가된 사건은 수사팀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고, 혐의 없음에 관한 진술이 진실이라고 평가된 사건은 불송치하는 경향이 강했다. 진술분석 결과와 경찰 수사 결과의 상관관계가 높은 것이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도 대체로 검찰이 기소했다. 법원에서 확정된 30여건 가운데 90% 이상 유죄 판결이 나왔다.
최 경위는 연구 내용을 동료 프로파일러들에게 알리고 함께 K-SCAM을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최 경위는 “다른 프로파일러들의 경험과 의견을 종합해 좀 더 완성도가 높고 한국 실정에 맞는 진술분석 기법으로 완성할 생각”이라며 “더 널리 활용돼 사건 해결과 당사자들의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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