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S+] 차등적용이냐 차별적용이냐… 최저임금 심의 딜레마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파행으로 몰고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채 불필요한 소모전만 반복하는 양상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임위는 오는 11일 3차 전원회의를 개최한다. 지난 1, 2차 전원회의에서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2025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이 공개되지 않은 채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공방만을 되풀이했다.
차등적용은 말 그대로 업종별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다르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경영계가 차등적용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최저임금 미만율'이다. 최저임금 미만율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을 말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 미만율은 13.7%로 전년(12.7%)보다 1%포인트 늘었다. 사용자의 지불능력을 고려하지 않은채 물가와 임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 '최저임금 수용성'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최저임금 미만율이 오르고 있다는 게 경총의 주장이다. 실제 주요 업종 간 최저임금 미만율 격차는 최대 41.2%포인트(농림어업 43.1%, 수도·하수·폐기업 1.9%)에 달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경영계를 대변하는 사용자위원으로 참여 중인 류기정 경총 전무는 "최저임금미만율이 업종 간 40~50%포인트 차이를 보이는 비정상적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업종별 구분적용이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도 못받는 노동자가 큰 업종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면 사업주가 인건비 부담을 덜어 경영을 유지하고 근로자들 고용에 도움이 된다는 게 경영계의 논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1개국 중 19개국이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고 있는 것도 경영계의 차등적용 도입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차등적용이 최저임금제도 취지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맞선다. 최저임금제는 1988년 노동 취약계층의 최소 생계가 가능한 하한선을 설정, 노동력의 질적 저하를 방지하기위 해 도입된 제도다. 이를 업종별로 차등적용하게 될 경우 특정 산업군에 대한 저임금 낙인이 생기고 해당 분야로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우려다.
노동계는 또한 해외에서 시행중인 차등적용은 임금 상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금 하향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과는 결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설민주노동연구원 조현실 비상임 연구위원은 "현재 정부와 경영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최저임금 하향'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의 법적인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최저임금법 4조는 '최저임금은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이를 근거로 최저임금제도 도입 첫 해인 1988년 업종별 차등적용을 한 차례 시행했고 이후로는 전 업종에 동일한 임금을 적용해왔다.
노동계에서는 이 같은 규정 자체를 삭제해 매년 반복되는 소모적인 논쟁을 원천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최저임금 정책토론회'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동 전문가들은 차등적용 조항을 삭제하고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교 교수는 최저임금법에 규정된 업종별 차등지급 조항 삭제를 제안하면서 "세계적으로 단일한 최저임금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또 "차등적용 기준 마련도 어려우며 해당업종이 겪고 있는 인력난을 악화하고 경쟁력을 낮추게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차등적용 대립으로 인상률 논의는 아짓 첫발도 떼지 못함에 따라 올해 심의가 법정 기한을 넘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최저임금 심의기한은 오는 27일까지이다. 이와 관련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은 "시간을 맞추는 것보다 논의를 심도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업종별 구분, 최저임금액 등 모두 합의도출에 지난한 과정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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