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7일' 열리는 운명의 결전…역대 최다 1342만 명의 미래 걸렸다[이도성의 안물알중]
이도성 기자 2024. 6. 10. 06:02
이도성 특파원의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몰라도 되는데 알고 나면 '썰' 풀기 좋은 지식 한 토막. 기상천외한 이웃나라 중국,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도성 특파원이 전합니다. "
지난 토요일, 중국 베이징공업대학교 부속 중학교 앞 도로가 전면 통제됐습니다. 중국의 국가 주관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高考)'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안과 경비원들은 도로 앞쪽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차량 출입을 막았습니다. 고사장 쪽으로는 신원이 확인된 수험생들만 들여보냈습니다. 함께 나온 가족들도 더는 들어가지 못하고 최후의 응원을 건넸습니다.
고사장으로 향하는 도로 한쪽엔 파란색 천막이 10개 설치됐습니다. 안에선 각 고등학교 관계자들이 책상을 놓고 학생들이 고사장 앞에 도착할 때마다 출석 체크를 했습니다. 학교 측이 마련한 '쑹카오추(送考處)'입니다. 시험을 치러가는 학생들이 준비물은 다 챙겼는지 확인하고 응원의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찌아요우(加油)' 라는 응원이 터져 나왔습니다. 붉은색 옷으로 맞춰 입은 선생님들이 결전을 앞둔 학생들을 꼬옥 끌어안아 줬습니다.
수험생들은 투명한 케이스를 하나씩 들고 고사장 안으로 향했습니다. 직접 준비한 필기구와 신분증, 수험표 등이 담겼습니다.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고사장 관계자들은 신분증과 수험표를 확인한 뒤 한 명씩 안쪽으로 들여보냈습니다. 한 수험생은 휴대전화를 들고 왔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되돌아왔습니다. 고사장 안에는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미소를 짓고 다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자녀들 고사장에 들여보낸 부모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자녀의 뒷모습을 휴대전화에 담거나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한참이나 떠나지 못했습니다.
같이 배웅 나온 어린 동생들도 형·누나에 기운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날이 덥다며 칭얼대면서도 시험을 잘 치르고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시험 시작 시간이 되자 정문이 굳게 닫히고 학부모들은 그제야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오카오'는 한국의 수능과 같은 대학 입학시험입니다.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해마다 6월 7일에 치러집니다. 코로나19와 대형 홍수 등을 이유로 날짜가 미뤄지거나 당겨진 적도 있긴 합니다.
하루에 끝나는 수능과는 달리 가오카오는 지역에 따라 최대 나흘 동안 치러집니다. 베이징의 경우 첫날인 7일엔 국어와 수학을, 이튿날엔 영어와 기타 외국어 그리고 사흘째 물리학·정치·화학, 마지막 날엔 역사·생물·지리학 시험을 봅니다.
올해 가오카오 응시자는 무려 1,342만 명입니다. 6년 연속으로 1천만 명을 넘겼는데요. 참고로 우리나라 지난해 2024학년도 수능 응시생은 44만여 명이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죠. 1977년에 가오카오가 부활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지난해보다도 51만 명이 늘었습니다. 900만 명 초반대를 유지하던 응시생 수는 2016년부터 8년 연속으로 늘어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경쟁도 치열합니다. 중국 전역의 4년제 대학교 모집 인원이 450만 명 정도로 추산되거든요. 정리하면 거의 900만 명이나 되는 수험생들이 4년제 대학을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차례 시험에 응시하는 이른바 'N수생'이 늘어난 것도 경쟁률 폭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해 N수생은 모두 413만 명으로 전체 응시생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규모 역시 역대 최다이고요.
중국 역시 대입을 '개천용'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기는데, 명문대에 진학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상위 100개 대학의 모집 인원은 고작 60만 명으로, 가오카오를 치르는 수험생 가운데 고작 4.4% 정도만 입학할 수 있습니다.
가오카오를 위해 1년을 불태운 수험생들을 위한 응원전도 뜨겁습니다. 각 학교에선 시험을 앞둔 학생들의 마지막 하굣길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오토바이를 일렬로 세워 조명을 비춰 밝은 앞날을 표현하거나 후배들이 한데 뭉쳐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남성 선생님들은 과감한(?) 의상으로 눈길을 끌기도 하는데요. 바로 중국 전통 의상인 여성용 치파오를 입고 등장하는 겁니다. '치파오(旗袍)'의 앞글자는 '깃발'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한데요. '전쟁에 나가 깃발을 내걸자마자 승리를 거둔다'는 뜻의 문장(旗開得勝)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로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치파오를 입고 수험장 앞에서 응원을 해왔는데 이제는 아버지들, 심지어 남성 선생님들까지 여성용 옷을 입고 응원전을 펼치는 겁니다.
수험장에선 혹시 모를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최첨단 기술도 동원하는데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감시 시스템도 도입됐습니다. 기침과 두드리는 소리 등을 분석해서 의심이 가는 패턴이 있는지 잡아내는 겁니다
대리시험을 잡아내기 위한 안면 인식 스캐너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쓰이고 있습니다. 고사장 입구의 보안 검사대는 휴대전화는 물론 스마트 시계와 안경 등 전자기기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부정행위를 원천차단하겠다는 거죠.
과거 중국에선 콩알 크기의 소형 이어폰이나 지우개 모양의 액정화면을 동원한 부정행위가 적발된 적이 있습니다. 고사장 인근 호텔에서 정답을 확인해 알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들 일당은 수험생 1명당 우리 돈 500만 원 정도를 받고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는데요. 결국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이번 시험 결과는 오는 25일쯤 발표된다고 합니다. 이어 대학 원서 접수도 시작하고요. 입시 과열은 중국에서도 큰 사회적 문제입니다. 시험 성적에 따라 인생의 앞길이 좌우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겠죠. 성적 비관으로 소중한 생명의 불꽃을 꺼뜨리는 일도 적지 않게 벌어졌습니다.
집중력을 올려준다는 말에 넘어가 이른바 '스마트 약물'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이유로 가오카오가 열리는 시기를 두고 '어둠의 6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올해는 슬픈 소식 없이 '기쁨의 6월'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면 좋겠네요.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중국 이야기. 몰라도 되는데 알고 나면 '썰' 풀기 좋은 지식 한 토막. 기상천외한 이웃나라 중국,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이도성 특파원이 전합니다. "
지난 토요일, 중국 베이징공업대학교 부속 중학교 앞 도로가 전면 통제됐습니다. 중국의 국가 주관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高考)'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안과 경비원들은 도로 앞쪽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차량 출입을 막았습니다. 고사장 쪽으로는 신원이 확인된 수험생들만 들여보냈습니다. 함께 나온 가족들도 더는 들어가지 못하고 최후의 응원을 건넸습니다.
고사장으로 향하는 도로 한쪽엔 파란색 천막이 10개 설치됐습니다. 안에선 각 고등학교 관계자들이 책상을 놓고 학생들이 고사장 앞에 도착할 때마다 출석 체크를 했습니다. 학교 측이 마련한 '쑹카오추(送考處)'입니다. 시험을 치러가는 학생들이 준비물은 다 챙겼는지 확인하고 응원의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찌아요우(加油)' 라는 응원이 터져 나왔습니다. 붉은색 옷으로 맞춰 입은 선생님들이 결전을 앞둔 학생들을 꼬옥 끌어안아 줬습니다.
수험생들은 투명한 케이스를 하나씩 들고 고사장 안으로 향했습니다. 직접 준비한 필기구와 신분증, 수험표 등이 담겼습니다.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정문으로 향했습니다.
고사장 관계자들은 신분증과 수험표를 확인한 뒤 한 명씩 안쪽으로 들여보냈습니다. 한 수험생은 휴대전화를 들고 왔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되돌아왔습니다. 고사장 안에는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미소를 짓고 다시 뛰어 들어갔습니다.
자녀들 고사장에 들여보낸 부모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자녀의 뒷모습을 휴대전화에 담거나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한참이나 떠나지 못했습니다.
같이 배웅 나온 어린 동생들도 형·누나에 기운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날이 덥다며 칭얼대면서도 시험을 잘 치르고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시험 시작 시간이 되자 정문이 굳게 닫히고 학부모들은 그제야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오카오'는 한국의 수능과 같은 대학 입학시험입니다. 매년 날짜가 달라지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해마다 6월 7일에 치러집니다. 코로나19와 대형 홍수 등을 이유로 날짜가 미뤄지거나 당겨진 적도 있긴 합니다.
하루에 끝나는 수능과는 달리 가오카오는 지역에 따라 최대 나흘 동안 치러집니다. 베이징의 경우 첫날인 7일엔 국어와 수학을, 이튿날엔 영어와 기타 외국어 그리고 사흘째 물리학·정치·화학, 마지막 날엔 역사·생물·지리학 시험을 봅니다.
올해 가오카오 응시자는 무려 1,342만 명입니다. 6년 연속으로 1천만 명을 넘겼는데요. 참고로 우리나라 지난해 2024학년도 수능 응시생은 44만여 명이었습니다. 엄청난 숫자죠. 1977년에 가오카오가 부활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지난해보다도 51만 명이 늘었습니다. 900만 명 초반대를 유지하던 응시생 수는 2016년부터 8년 연속으로 늘어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경쟁도 치열합니다. 중국 전역의 4년제 대학교 모집 인원이 450만 명 정도로 추산되거든요. 정리하면 거의 900만 명이나 되는 수험생들이 4년제 대학을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차례 시험에 응시하는 이른바 'N수생'이 늘어난 것도 경쟁률 폭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올해 N수생은 모두 413만 명으로 전체 응시생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규모 역시 역대 최다이고요.
중국 역시 대입을 '개천용'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기는데, 명문대에 진학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와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상위 100개 대학의 모집 인원은 고작 60만 명으로, 가오카오를 치르는 수험생 가운데 고작 4.4% 정도만 입학할 수 있습니다.
가오카오를 위해 1년을 불태운 수험생들을 위한 응원전도 뜨겁습니다. 각 학교에선 시험을 앞둔 학생들의 마지막 하굣길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오토바이를 일렬로 세워 조명을 비춰 밝은 앞날을 표현하거나 후배들이 한데 뭉쳐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남성 선생님들은 과감한(?) 의상으로 눈길을 끌기도 하는데요. 바로 중국 전통 의상인 여성용 치파오를 입고 등장하는 겁니다. '치파오(旗袍)'의 앞글자는 '깃발'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한데요. '전쟁에 나가 깃발을 내걸자마자 승리를 거둔다'는 뜻의 문장(旗開得勝)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로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치파오를 입고 수험장 앞에서 응원을 해왔는데 이제는 아버지들, 심지어 남성 선생님들까지 여성용 옷을 입고 응원전을 펼치는 겁니다.
수험장에선 혹시 모를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최첨단 기술도 동원하는데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감시 시스템도 도입됐습니다. 기침과 두드리는 소리 등을 분석해서 의심이 가는 패턴이 있는지 잡아내는 겁니다
대리시험을 잡아내기 위한 안면 인식 스캐너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쓰이고 있습니다. 고사장 입구의 보안 검사대는 휴대전화는 물론 스마트 시계와 안경 등 전자기기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부정행위를 원천차단하겠다는 거죠.
과거 중국에선 콩알 크기의 소형 이어폰이나 지우개 모양의 액정화면을 동원한 부정행위가 적발된 적이 있습니다. 고사장 인근 호텔에서 정답을 확인해 알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들 일당은 수험생 1명당 우리 돈 500만 원 정도를 받고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는데요. 결국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이번 시험 결과는 오는 25일쯤 발표된다고 합니다. 이어 대학 원서 접수도 시작하고요. 입시 과열은 중국에서도 큰 사회적 문제입니다. 시험 성적에 따라 인생의 앞길이 좌우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겠죠. 성적 비관으로 소중한 생명의 불꽃을 꺼뜨리는 일도 적지 않게 벌어졌습니다.
집중력을 올려준다는 말에 넘어가 이른바 '스마트 약물'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이유로 가오카오가 열리는 시기를 두고 '어둠의 6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올해는 슬픈 소식 없이 '기쁨의 6월'이라는 말이 생겨났으면 좋겠네요.
이도성 베이징특파원 lee.dosu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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