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공시 고작 3곳…불투명한 인센티브에 눈치만
한국거래소가 상장사들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에 나섰다. 전국을 돌며 상장사들과 만나고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이 직접 홍보에 나서는 등 밸류업 분위기 확산을 위해 애쓰고 있다. 다만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실행 방안인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단행한 상장사는 3곳에 불과해 정책 안착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여전히 정부의 세제 지원 등 확실한 인센티브 제공 여부가 불확실해 상장사들의 눈치 보기가 이어지고 있다.
KB금융의 경우 올해 4분기 중 구체적인 내용을 공시하겠다는 예고로, 실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제시한 상장사는 2곳에 불과하다. 3곳 모두 지난달 이뤄진 공시로 이달 들어선 단 한 곳의 추가 공시도 없었다.
거래소는 밸류업 공시에 물적·인적자본 투자, 사업구조 개편, 주주환원 확대 등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 담겨야 하는 만큼 제도 정착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거래소 관계자는 "중장기 목표치와 재무 계획까지 수립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상장사들의 의견이 많았다"며 "저희도 바로 공시가 많이 나올 것으론 예상하지 않았다. 하반기부터 공시가 많이 이뤄질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거래소 차원의 정책 불확실성은 대부분 해소됐으나 세법 개정이 필요한 세제 지원이 불투명한 상황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최경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중순 법인세 세액공제,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등 밸류업 참여 기업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 추진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최근 개원한 22대 국회의 의석 구조상 300석 중 171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의 동의 없인 세법 개정이 불가능하다. 여야의 원 구성 협상이 지연되면서 밸류업 정책 관련 논의는 시작조차 못했다.
밸류업 공시 제도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거래소가 올해 3분기 발표하는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밸류업 공시와 지수가 직접 연계되지 않아도 공시 참여율이 저조할 경우 밸류업 정책을 외면하는 신호로 인식될 수 있어서다.
지난달 31일에는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이 대형 상장사 12곳과 직접 만나 선도적인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참여를 독려했다. 대형 상장사들은 빠른 속도보다 충실한 내용을 초점을 맞추겠다면서 예고공시 뒤 본공시하는 단계적 공시 방침을 밝혔다. 이들 두고 대형 상장사들이 세제 지원 단행 여부 등 시장 분위기를 살핀 뒤 공시하겠다는 유보적 입장을 에둘러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거래소는 밸류업 프로그램 정착을 위한 제도 개선과 상장사 지원에도 나섰다. 이달 4일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을 개정, 기업가치 제고 계획 항목을 신설했다. 이 항목에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일자, 계획 수립 과정에 이사회 참여 여부 및 주요 논의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10일부터는 중소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기업 밸류업 공시 영문 번역 지원 서비스를 개시한다. 영문공시 역량이 부족한 중소 상장사가 전문번역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하면 거래소가 번역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구조다. 지원 대상은 자산총액 코스피 3000억원 미만, 코스닥 1500억 미만 상장사다.
서진욱 기자 sj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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