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을 읽는 새로운 시각] ①“저출산 인한 인구 감소는 필연, 해결 과제가 아닌 관리 대상 삼아야”

정미하 기자 2024. 6.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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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축소되는 세계’ 저자 앨런 말라흐 인터뷰
“지금 인구 감소하는 국가는 앞으로도 감소”
인구든 경제든 ‘성장이 최고’는 틀렸다
인구 감소하면서 ‘축소 도시’가 표준

한국 정부가 지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예산은 279조9000억 원.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당장 올해 3월 출생아 수는 1만966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감소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물론 현 정부는 각종 재정 지원책은 물론 출산을 꺼리게 하는 경제·사회 구조를 바꾸는 처방을 내놓으며 ‘아이를 낳아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 방법이 최선일까. 저출산 관련 책을 쓴 저자로부터 저출산의 원인과 해결법, 저출산에 직면한 한국이 나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을 1.0명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인구전략기획부’와 ‘저출생수석실’을 신설하고, 단기 육아휴직과 혼인에 특별세액 공제 방안 등을 내놓았다. 그만큼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 기준)인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본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접근법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도시 계획 전문가 앨런 말라흐(Alan Mallach)도 마찬가지다. 그는 책 ‘축소되는 세계’에서 출산율 증가라는 접근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말라흐는 “지금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라며 “인구 감소는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인구든, 경제든 ‘성장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겼던 사고방식이 틀렸음을 지적한 것이다.

'축소되는 세계'의 저자인 도시 계획 전문가 앨런 말라흐(Alan Mallach)가 5월 16일 줌(zoom)으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조선비즈

이에 조선비즈는 미국 뉴저지에 거주하는 말라흐와 지난달 16일 줌(zoom)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5월 9일)에서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사회부총리가 이끄는 조직으로 신설하겠다고 밝힌 지 일주일 뒤였다. 말라흐는 “한국은 2020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며 “성장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보고 인구 감소를 실패의 신호로 여기는 한 인구가 감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비관주의 풍조가 조장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인구 감소로 인한 영향은 정해져 있지 않기에, 인구 감소를 결과가 아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라흐는 55년 넘게 주택 및 도시 관련 분야에서 일한 도시 계획 전문가다. 예일대를 졸업했고 뉴저지 트렌턴의 주택 및 경제 개발 책임자를 역임했으며 브루킹스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중국 난징 동남대의 도시 계획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가을에는 이 학교의 건축 및 도시 계획 대학원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할 예정이다.

말라흐는 자신의 전공을 반영하듯 출생률이 줄어들고 인구가 감소하면서 ‘축소 도시’(shrinking city·짧은 기간 안에 상당수의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가 등장할 것이라 봤다. 말라흐는 “많은 나라의 인구 성장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세상에서 축소 도시는 더 이상 이례적인 존재나 아웃라이어(outlier)가 아니다”라며 “동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축소 도시가 표준이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축소 도시가 인구 감소라는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민관이 협력한다면 경제 발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위대한 도시를 인구가 많은 도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했듯이 말이다.

─책에서 ‘일단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면 인구 감소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한 부분이 충격적이었다.

“인구 감소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출산율은 일단 하락 국면에 접어들면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1명일 때 인구가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 대체출산율이라 한다. 현재 전 세계 선진국 대부분의 합계출산율은 2.1명 미만이다. 2008년에 대체출산율보다 낮은 합계출산율을 기록한 64개국 중 단 1개국, 이란을 제외한 63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에도 여전히 대체출산율을 밑돌았다. 그리고 태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합계출산율도 2.1명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장기적인 추세다.”

참고로 한국의 1분기 합계출산율은 0.76명이다. 1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로 1년 전(0.82명)보다 0.06명 줄며 처음으로 0.8명 선이 붕괴했다. 이런 추세면 올해 합계출산율은 0.6명대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2012년(48만 명)의 절반 이하다. 1992년(73만 명)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 절벽’이 코앞으로 닥친 상황에서 통계청은 6일 2022년 인구총조사를 기초로 30년 뒤부터는 우리나라 인구가 매해 전년보다 1% 넘게 줄어들어 100년 뒤에는 2000만 명을 밑돌 것으로 봤다.

올해 3월 출생아 수는 1만966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 감소했다. 2월에 이어 두 달 연속 2만 명을 넘기지 못했다. 3월 출생아 수만 놓고 보면 198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저치다. 서울 도심의 공사장 가림막에 그려진 행복한 가족 그림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 뉴스1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단기적으로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데 그칠 것이라고 봤다. 왜 그런가.

“한국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비단 한국 정부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정부도 무료 또는 저렴한 보육, 신생아 수당 제공 등 출산 가정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의 조치를 내놓았다. 정부가 모든 종류의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으면 출산율은 아마 조금은 올라갈 것이다. 일부 가족은 ‘저렴하게 보육할 수 있으니, 아이를 낳겠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이런 효과는 단기간에 그치는 경향이 있고 출산율은 머지않아 대체출산율보다 낮은 수준으로 돌아간다.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믿지만, 이건 부분적인 이유일 뿐이다. 프랑스를 보라. 프랑스는 수년 동안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수십억 유로를 지출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대체출산율보다 낮다. 프랑스의 인구가 늘고 있는 건 출산율 증가가 아닌 이민 때문이다.”

─전 세계 인구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

“인구 감소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는 인구가 감소하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최고의 인구학자들은 앞으로 45~50년 뒤부터 전 세계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 워싱턴대의 건강지표평가연구소는 2050년이 되면 65개 국가, 즉 전체 국가 중 3분의 1에서 인구 성장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또 다른 5분의 1 국가에서 연간 인구성장률이 0.5%를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 인구 감소는 필연이고, 인구 감소는 되돌릴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노동 인구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소비도 감소하고, 이로 인해 경제가 쇠퇴할 거라고 봤다.

“인구가 증가하지 않으면 경제 성장이 어려워지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생산성 향상과 경제 성장을 일으키는 요소가 인구 증가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인력의 기술 수준과 교육 수준을 높여 인적 자본을 늘리면 된다. 또한 보통 20~64세로 정의되는 생산가능인구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고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 내 노동 인구의 15%는 65세 이상이다. 요즘 한국 사람들도 대부분 80대까지 살지 않나. 요즘은 65세라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인 데다 계속 일하려고 한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70대 중반임에도 일본 교토에 있는 한 대학에서 현역으로 일한다.”

'축소되는 세계'의 저자인 도시 계획 전문가 앨런 말라흐(Alan Mallach). / 앨런 말라흐 제공

─인구가 줄어들면 모든 도시가 당신이 말한 ‘축소 도시’가 되나. 축소 도시란 뭔가.

“짧은 시간에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를 말한다. 나는 미국, 유럽, 일본에서 수년 동안 축소 도시를 살펴봤다. 오랫동안 나와 동료들은 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이상한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5년 전부터 축소 도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인구 통계 등을 분석한 결과 축소 도시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다.”

─축소 도시 간에도, 도시 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한다고 했다.

“경제 성장이 이뤄질수록 불평등을 완화하기는 더 쉬워진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파이가 크면 클수록 누구의 것도 빼앗지 않고 자원을 재분배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가 작으면 누군가의 자원을 빼앗아야만 자원을 재분배해야 한다. 이렇듯 인구가 감소하면 경제가 성장할 여지가 줄고,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점점 줄어들기에 불평등은 심화할 수 있다.”

─도시 간, 도시 내의 불평등을 완화할 방법은 없을까.

“정부의 신중한 정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조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 취약 지역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술 허브’를 만드는 것이다.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자원을 재분배하고 취약한 지역의 경제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만약 젊고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일자리가 거의 없는 도시에서 자랐다면 자기 기술과 에너지를 쏟을 기회가 더 많은 곳으로 이사를 갈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인구 감소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의 경제를 되살리는 노력을 바이든 정부가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구 약 15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인 뉴욕주(州) 시러큐스다. 과거 시러큐스는 강력한 경제 산업 도시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시러큐스를 떠났고 이로 인해 인구가 줄었고 빈곤율은 높아졌다. 이번에 바이든 정부는 시러큐스에 공장을 건설 중인 마이크론(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줬다. 시러큐스 주민들은 마이크론이 시러큐스 외곽에 짓고 있는 거대한 공장이 강력한 경제적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기에 기대를 품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시러큐스를 찾아 마이크론에 61억4000만 달러(약 8조45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미 상무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뉴욕주와 아이다호주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뉴욕주와 아이다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투자가 될 것”이라며 “2만 개의 직접 건설 및 제조 일자리와 수만 개의 간접 일자리를 포함해 7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6일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로 CEO로부터 명패를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뉴욕주(州) 시러큐스를 찾아 마이크론에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 61억40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 AFP 연합뉴스

─정부의 도움 없이 축소 도시였지만, 여파를 극복한 사례는.

“피츠버그와 볼티모어에 있는 공장은 미국 제조업 쇠퇴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과 의료 서비스 분야 덕분에 경제를 재건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미국 경제에서 교육과 의료, 그중에서도 의료의 중요성이 커진 영향이다. 의료 부문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대 5%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18%로 늘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의료 센터는 볼티모어 최대의 고용주가 됐고 피츠버그 대학교 의료 센터는 현재 펜실베이니아주의 민간 부문 최대 고용주이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료 센터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축소 도시가 표준이 된 세상에서 한국에 남길 조언이 있다면.

“인구 감소는 되돌릴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잘 작동하는 건강한 도시를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2002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의 86개 도시 중 31곳에서 인구가 줄어들었다.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도시 인구는 10% 이상 감소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의 경제는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계속 성장하겠지만, 다른 지역은 역성장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지만, 시대가 변했고 인구 감소가 곧 새로운 현실이라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건강한 지역 경제와 지역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정부와 주요 대학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수많은 축소 도시가 경제 위기, 정치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축소 도시는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역량과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협력, 주민과 민관 지도자의 의사소통, 지역 사회의 인적 자본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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