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농가 경기침체에 농기계 구매 소극적…다각적 성장동력 찾아야
농산물값 하락 생산비 상승 악재
고령화·일본산 점유 증가도 영향
자율주행·AI 탑재 소비자 공략
‘밭작물 특화 농기계’ 연구 필요
캐피털 제도·수리인력 양성 제안
규제 완화 연구개발 예산 확충을
국내 농기계산업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농지면적과 농업인구 감소도 계속되면서 단기간 성장동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농민신문’은 국내 농기계 전문가 6인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벌여 농기계업계 현황을 진단하고 타개책을 모색해봤다. 설문엔 최형우 대동 국내사업본부장, 유현석 LS엠트론 국내영업본부장, 김동익 TYM 국내사업본부장 등 국내 ‘빅3’ 농기계업체 국내 영업 책임자가 참여했다. 장길수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 김혁주 한국농업기계학회장(순천대학교 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 이건국 농협경제지주 자재사업부 농기계팀장 등도 함께했다.
잘나가던 농기계업계, 왜 침체 늪에 빠졌나.
농기계업체가 고전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농가의 가처분소득 감소와 국내외 경기 부진을 꼽았다. 최형우 대동 국내사업본부장은 “최근 쌀값이 몇년간 하락세를 보이면서 농가들이 신규 농기계를 장만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고, 축산농가마저 소값·돼지값 고전으로 구매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고 진단했다.
유현석 LS엠트론 국내영업본부장은 “농업 생산비는 물론 전반적인 생활 물가가 상승하다보니 농가들이 신형보다는 중고 농기계를 구매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김동익 TYM 국내사업본부장은 “고금리와 내수 침체가 심각하고 세계 전반적으로도 경기가 좋지 못하다”고 말했다.
스마트팜 등 전통적 농기계가 꼭 필요하지 않은 영농 형태가 확산하는 것도 요인으로 봤다.
장길수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는 “기본적으로 농지가 감소하는 데다 논에 시설하우스·스마트팜을 설치하는 사례가 늘었다”면서 “이들은 농기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건국 농협경제지주 자재사업부 농기계팀장은 “농촌 고령화가 심화하는 것 자체가 농기계 구매의지를 꺾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혁주 한국농업기계학회장(순천대학교 융합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은 “일본산 이앙기·콤바인의 한국시장 점유율이 40% 이상으로 추정되는 등 시장 잠식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를 타개할 전략은.
업체들은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등 신규 시장을 넓히는 방향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현석 본부장은 “LS엠트론은 자율주행 트랙터로 인건비를 아낄 수 있고 더욱 정교한 작업도 가능해져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부각하는 방법으로 해당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익 본부장은 “TYM은 자회사 ‘TYMICT’를 설립해 자율주행 농기계를 포함해 텔레매틱스, 스마트팜 플랫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 사용 중인 농기계에 부착만 하면 자율주행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자율주행키트 A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형우 본부장은 “대동은 AI를 적용한 플랫폼 사업을 통한 차별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서 “농기계가 단순히 작업을 돕는 수단을 넘어서 토양분석도 하고 적절한 종자를 추천하며, 작업시기도 알아서 결정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계화가 더딘 밭작물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최신 농기계에 대한 교육·체험 기회를 고령농에게도 확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장길수 이사는 “밭작물의 실질적 기계화율은 30% 초반에 그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밭작물 특화 농기계 보급률을 끌어올린다면 시장 성장 여력이 있는 만큼 해당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국 팀장은 “농촌 어르신들이 최신 농기계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교육·체험 기회를 더욱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혁주 학회장은 “세계 농업 흐름은 디지털기술을 노지에 접목한 디지털 노지농업이 대세”라면서 “이런 기술을 업체들이 제공할 수 있어야 소비자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업체 관계자들은 콤바인·이앙기 등에 대해서만이라도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최형우 본부장은 “국내 기업은 자체적 노력만으로 이앙기·콤바인 개발이 쉽지 않다보니 일본과의 경쟁력에서 조금씩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현석 본부장은 “전북대학교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산학협력으로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기업과 견줘 비용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판매망을 정비하고 연구개발(R&D)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혁주 학회장은 “이앙기·콤바인의 국산 제품 점유율 확대를 위해서는 업계가 공동으로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내 종합형 기업체 3사에서 콤바인·이앙기 공동생산·공동판매를 위한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인 설립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체 ‘빅3’가 참여하고 해당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을 3사 영업망을 통해 판매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길수 이사는 “삭감된 R&D 예산을 최소한 원래 수준으로 복구해야 한다”고 했다.
농기계산업 활성화방안은.
전문가들은 노후 농기계 조기 폐차 지원 재개, 농기계 구매 캐피털(할부 금융) 제도 도입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김동익 본부장은 “일단 농기계 사용자가 많아져야 하는 만큼 귀농인 유입 정책을 확대하고, 농가가 농기계를 보다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캐피털 제도를 고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현석 본부장은 “지난해 중단한 ‘농기계 폐차 지원 사업’을 부활해 환경에도 기여하고 새 농기계 구매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길수 이사는 “최근 전기차처럼 ‘전기 트랙터’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농기계가 개발되고 있지만, 이들 농기계는 ‘트랙터’라는 기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정상적인 유통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업계의 기술개발 속도에 맞춰 규제 등을 신속히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국 팀장은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연계해 농기계수리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 인력을 채용하는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농가들이 마음 놓고 농기계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혁주 학회장은 “내수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농기계 수출산업화 정책에 더욱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 “관련 R&D와 제조 기반 확대 등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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