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땀승 거둔 모디, 대외 성과 필요… "한·인도 CEPA 개정 절호의 기회"
모디 3연임 했지만 소속당 단독과반 실패
국내정치 발판 위해 외교적 성과에 집착
'중국 대체재'로서 한국과의 협력 여지 커
세계 3대 경제대국(G3)을 표방하며 비상을 꿈꾸는 인도의 미래를 결정할 총선이 최근 44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결과는 인도국민당(BJP) 소속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가 이끄는 여권연대 국민민주연합(NDA)의 '진땀승'이었다. 모디 개인은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 이후 첫 3연임에 성공한 '역사적 지도자'로 남게 됐지만, 내심 기대했던 압승(단독 과반)을 거두지 못해 뒷맛이 씁쓸한 선거였다.
벌써부터 언론에선 모디식 경제정책(모디노믹스)의 약화를 우려하며 모디 리더십에 흠집이 갈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개표 당일 인도의 '니프티50' 지수가 6% 가까이 폭락했을 정도. 하지만 한국일보가 만난 국내 최고 인도 전문가들의 얘기는 달랐다. 모디의 질주에 어느 정도 제동은 걸렸지만, 세계 1위 인구대국의 고속 성장엔 큰 장애물이 되지 않으리라는 평가다.
인도는 중국과 달리 일반인에겐 여전히 베일에 싸인 신비의 나라다. 그래서 G3를 노리는 이 나라를 어떻게 공략할지를 두고, 정부·기업의 이해도와 접근법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그래서 한국일보는 사단법인 인도연구원과 함께 '모디 3기 정부, 한국·인도 관계 집중조명'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행사에선 국내외 최고 인도 전문가들이 모여 이번 총선 결과를 분석하고 모디 3기 시대 인도와 한국의 협력관계를 재조명했다.
이준규 인도포럼 회장(전 주인도대사), 백좌흠 인도연구원장, 박현재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델리사무소장, 최윤정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 산딥 미쉬라 인도 자와할랄네루대 동아시아센터 교수, 이지은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 김동규 전 코트라(KOTRA) 인도 벵갈루루 무역관장, 김응기 인도연구원 이사가 패널로 참석했다.
행사는 장재복 주인도 한국대사의 기조연설(화상)로 시작됐다. 장 대사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총선 이후 축하 메시지를 교환하는 등 정상·고위급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모디 3연임은 양국 관계의 협력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구체적인 성과를 일관성 있게 논의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디, 힌두 본진에서도 졌다
이번 인도 총선은 집권 BJP가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BJP가 주도하는 여당연합인 NDA는 전체 543개 지역구에서 293석을 얻었다. 최대 450석을 차지할 거란 출구조사 결과를 머쓱하게 했다.
특히 모디 총리가 속한 BJP가 부진했던 것이 이유였다. BJP는 단독으로 240석을 얻는 데 그쳤는데, 압승했던 2014년(282석)과 2019년(303석) 선거보다 42~63석이 모자란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간디·네루의 전통을 잇는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INC)가 이끄는 정치연합 인도국민발전통합연합(INDIA)은 232석을 얻어 예상보다 선전했다.
심포지엄에 나선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①힌두민족주의(힌두교가 인도의 국가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보는 사상)의 퇴조②민생을 외면한 경제성장 정책에 대한 심판이라고 분석했다. BJP는 '힌두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 과거 극단주의로 비판받았던 힌두민족주의를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모디 총리였다.
하지만 한때 인도 정치를 휩쓸던 BJP는 힌두민족주의의 본진 우타르프라데시주(인도 북부·네팔과 경계)에서 36석을 얻는 데 그치며 야당연합에 43석을 내줬다. BJP는 전통적으로 약세였던 남인도뿐 아니라 중부의 마하라슈트라주(48석)에서 17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이지은 교수는 "서민경제 위기 속에서도 파키스탄을 상대로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등 BJP는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는 '애국심 마케팅'을 통해 선거공학적으로 성공해왔다"면서"고질적 청년 실업 문제에 희망이 보이지 않자 힌두민족주의가 자연스럽게 퇴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산딥 미쉬라 교수도 "모디 총리는 연정을 구성할 정당에 재무·외교·국방 등 중요한 부처 장관직을 제공해야 한다"며 "인도 국민들이 모디의 원맨쇼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엔 일본, 3년 후 독일 추월
다만 전문가들은 인도의 대외정책과 경제정책 기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힌두교 제일주의를 앞세운 대내 정치엔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인도의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중국 대체재'로서의 위상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백좌흠 인도연구원장은 "NDA에 참여하는 지역정당의 입김이 세지고, 야당연합이 강력하게 모디 총리에게 반기를 들 수 있어 빈곤층 등에 대한 복지정책은 강화될 것"이라면서도 "인도·태평양 환경에서 인도 외교의 중요성은 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의 고성장세는 이번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인도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6.8%로 중국(4.6%)을 훨씬 상회한다. 내년에도 7%대 성장이 예상되는 인도는 현재 주요 20개국(G20) 중 유일하게 6, 7%대 성장세를 보이는 국가다. 지난해 말에는 홍콩을 제치고 증시 시가총액에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로 올라섰다.
내년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충제 소장은 "인도가 단기적으로 중국을 대체할 수 없으나, 중국의 대안은 인도가 유일하다"며 "모디노믹스의 지속적 추진으로 2027년 전후 (독일까지 제치고) G3에 등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대외적 성과 필요한 양국 정부
모디 총리가 국내 정치 상황 타개를 위해 '대외적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한국 입장에선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등 친서방 정책을 우선에 두고 중국을 위협으로 생각하면서도, '포용성'의 상호협력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인도 대외 정책의 기본이다. 한국 입장에선 공략할 지점이 많다.
한국·인도 모두 국내 정치 무게 추가 야권 쪽으로 쏠린 상황을 감안하면, 외교 성과를 내려는 양국 지도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양국 협력 강화에 대해 최윤정 센터장은 "BJP는 미국 등 강대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경제·군사력 등 하드파워를 겸비하는 '근육 외교'를 추구해왔다"며 "총선 결과에 따라 대외정책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되, 중국과 차별성을 드러내며 배타성을 최소화하는 '실리추구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간 지지부진했던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정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주장도 나왔다. CEPA는 2010년 한국과 인도가 체결한 사실상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도 내부에서 FTA 용어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고려해 별도로 만든 용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국내 기업의 인도 시장 진출을 위해 원산지 기준 완화등 CEPA 개선을 추진해왔으나, 인도 측의 미온적 협상 태도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김응기 인도연구원 이사는 "성과를 찾는 정부 출범 초기에 CEPA 개선 협정과 같은 현안의 빠른 타결이 가능할 수 있다"면서 "우리도 공격적으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실리적 협상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부상하기 위해 협력국에 유리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 정부가 투자유치와 기술협력 등을 넘어 핵심광물 등 경제안보관점에서의 협력 방안을 적극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젊고 우수한 노동력이 배출되는 인도와 전략적인 인적 교류를 추진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박현재 교수는 "한국은 낮은 출산율과 의대 쏠림 현상 등으로 높은 인건비로 인한 낮은 생산성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며 "중소·중견기업이 인도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우수한 인도 인재가 국내 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자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도 중앙정부의 힘이 빠진 만큼, 각 지방정부와 야당 등 개별 협력관계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한국 기업이 진출한 주요 주(州) 정부 및 기관과 상호 협정을 체결하고 협력 사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미쉬라 교수는 "인도 경제와 외교정책 결정의 주체가 다양해진다는 것은 한국의 대(對)인도 협상 성사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라며 "그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 교류가 더욱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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