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광안리, 거리예술의 상설마당 된다면

오광수 선임기자 2024. 6. 1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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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과 놀이, 신명의 난장…배우와 관객 아우른 축제
수영은 들놀음 전통 간직, 해마다 춤·노래·극 펼치길

100여 년 전의 일본식 가옥이 다닥다닥 붙은 거리, 그곳 민박 집에 짐을 풀자마자 발걸음을 재촉한다. 개막놀이가 곧 시작되는 까닭이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목포근대역사관 1관(옛 목포일본영사관)을 끼고 걷는다.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주택을 지나 오거리문화센터 쪽에서 왼쪽으로 꺾으니 경찰이 차량 진입을 막고 있다. ‘아하, 저곳이구나’. ‘마당’이 어디쯤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가는 길의 한 블록 앞에서 풍물 소리와 함께 거대한 사자탈이 지나간다. 개막 퍼레이드다. 빛의 거리에서 출발해 다시 빛의 거리로 돌아온다. 빛의 거리에는 으뜸 마당(1마당)인 로데오광장, 아이들을 위한 ‘독도는 우리땅’(3마당) 등 ‘마당’ 여럿이 있다. 개막놀이 ‘못난이들의 합창’이 진행된다. ‘보잘 것 없는 것의 거룩함, 별 것 없는 사람들의 신나는 마당판’이라고 한다. 놀이꾼이 꽤 많다. 천공요람 서승아, 윤선영과 오빠야, 극단 갯돌, 뽀글이 아줌마 부대, 몸빼 유랑단, 못난이 인형단, 극단 꼭두광대, 인형엄마 엄정애, 타악그룹 유타, 아랑고고난타, 아라리풍물패, 작은광대우주, 극단 아띠, 무안 심장의소리, 목원동풍물패, 삼향동풍물패, 삼호풍물패, 氣예무단…. 축제를 축제답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제24회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전남 목포 원도심 일대에서 열렸다. 20년 넘도록 해마다 꼬박꼬박 축제를 이어간 그 열정이 눈물겹다. 그런데 올해 축제 예산은 ‘고작’ 1억3000만 원. 외국 공연팀의 초청 비용을 제외하면 돈이 남을 게 없다. 축제를 이끄는 이들의 무한 헌신이 없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싶다.

마당극은 탈춤 풍물 판소리 등 전통공연예술을 연극과 접목한 것이다. 전통연희를 창조적으로 이어받은 공연 양식이다. 그 바탕에는 ‘마당 정신’과 ‘놀이 정신’이 스며 있다. 관객의 집단적 신명을 확인하는 축제적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배우와 관객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마당극은 상황적 진실성, 집단적 신명, 현장적 운동성, 민중적 전형성 등의 공연 미학을 지닌다.

‘굿판’에서는 1974년 국립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 ‘소리굿 아구’(이종구 김민기 김지하 공동창작)를 마당극 운동의 출발점으로 본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 땅에서 마당극 운동이 일어난 지 50년째다. 이를 기려 부산에서 활동 중인 극단 자갈치가 마당극 2편을 무대에 올렸거나 올릴 예정이다. 먼저 지난달 11일 부산 금정구 부곡동 신명천지 소극장에서 마당극 ‘환생굿’을 선보였다.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마당극 ‘신새벽 술을 토하고 없는 길을 떠나다’를 무대에 올린다. ‘신새벽…’은 마당극 운동을 이끄는 채희완 민족미학연구소 소장이 연출을 맡았다. ‘신새벽…’은 원효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창작 마당극이다. 1996년 첫 선을 보였다.

말이 ‘50년’이지 마당극의 길은 울퉁불퉁했다. 마당극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던 1980년대에 반짝 전성기를 누렸다. 지금은 침체기 또는 정체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마당극은 변신을 거듭하며 세월의 끈을 이었다. 목포의 극단 갯돌이 그 대표적인 사례. 갯돌은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2013)에서 미디어 파사드 영상기술을 결합하는 실험을 했다. AI 배우와 프로젝션 매핑을 곁들였다. 프로젝션 매핑은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뤄진 영상을 투사하는 영상 기술 중 하나다. 1986년 창단한 극단 자갈치는 40년 가까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에는 제34회 대한민국 마당극축제가 예정돼 있다. 2년 전 이 축제는 ‘오광대의 대표 도시’로 불리는 경남 통영에서 열린 바 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지역으로 좁혀 보면 그 맥이 뚝뚝 끊긴다. 지난 2011년 여덟 번째 부산마당극잔치가 부산 남구 대연동 평화장터 잔디마당 등에서 열렸다. 요즘은 부산마당극잔치 소식이 뜸하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상시적인 난장’이 아쉽다. 물론 난장은 ‘장날 외에 특별히 며칠 간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이다. ‘상시적인 난장’이란 ‘뒤집어보기’라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상시적인 난장의 장소로 부산 수영구 광안리 해변 테마거리를 꼽고 싶다. 부산은 걸출한 야류(들놀음) 두 개를 가졌다. 동래야류와 수영야류가 그것이다. 수영은 수영야류의 DNA가 흐르는 곳이다. 2007년 제4회 바다마당극제가 광안리 해변에서 열렸다. 2018년에는 부산국제거리공연예술제가 같은 곳에서 열렸다. 벨기에 스페인 핀란드 등 7개국 25개 팀이 참여한 거리예술제였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도 광안리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춤과 노래, 극이 어우러진 거리예술제를 광안리 해변에서…. 해마다 이를 볼 수 있다면, 그게 현실이 된다면 좋겠다.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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