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내게 가장 기억 남는 선물은?
독자분께 질문을 드려봅니다. ‘어떤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요?’
의외로 현금이나 가장 비쌌던 선물은 아닐 겁니다. 평소에 정말 갖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못 샀던 걸 누군가 마침 선물해준다든지, 혹은 그 선물로 마음을 위로받았던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필자의 경우는 힘들게 일하던 직장에서의 마지막 근무날, 퇴근 후 지인에게서 받았던 선물입니다. 작은 케이크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는 메시지 카드가 있었는데 그동안의 고생에 큰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런데 각자 소중한 선물에 대한 경험이 분명히 있음에도 많은 설문조사에서 받고 싶은 선물 1위가 현금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받고 싶은 사람의 마음과 주는 사람의 마음이 일치되기가 쉽지 않았던 경험 때문일 것입니다.
오래 상담했던 중년 여성분이 힘들게 털어놓았던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자녀들이 해외여행을 예약해 두고 같이 가자고 하고 또 기념일마다 유명한 레스토랑을 모셔 가는데, 늘 본인에게는 미리 물어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해외에 나가고 비싼 곳이니까 당연히 어머니가 좋아하시겠지’라고 자녀분이 지레짐작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분은 약한 공황 증상과 어지러움이 있어서 비행기 타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고, 치아도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한 남성은 해외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는데 동행한 아내는 타지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서 우울증을 앓았고, 향수병까지 겹쳤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를 원하는 외국 대도시에 박물관 미술관이 이렇게 많은데 그런 곳에나 슬슬 다니면 되잖아?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내는 그런 남편의 태도에 더욱더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자신만의 렌즈로 상대를 바라보면 상대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조울병으로 입원한 딸에게 엄마는 늘 비싼 포도를 정성껏 포장해서 들고 오지만, 사실 딸은 어릴 때 트라우마로 포도를 먹지 못합니다. 싱싱한 과일을 먹이기 위해 병원까지 먼 거리를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을 과연 ‘사랑’이 아니면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받는 사람은 ‘나를 사랑해서 주는 마음이구나’라고 애써 이해해보지만 그 사랑이 내가 원한 것이 아닐 때, 반갑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론 큰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검사 중에 가족에게 사랑 인정 존중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대체로 이 3가지는 같은 축으로 움직입니다. 세 가지 모두를 충분히 받고 있다고 답하거나, 전혀 그렇지 않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종종 사랑받고 있지만 인정이나 존중은 받고 있지 못한다, 라고 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자세히 들어보면 상대의 행동을 ‘사랑’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 같지만, 결국은 내 존재를 인정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비싼 여행 패키지를 자녀들이 보내준다고 해서 차마 거절은 못 하지만 장시간 힘든 비행과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에 나가는 것이 스트레스인 분들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태도일 것입니다. 어느 수필가의 글에서 선물이란 늘 사용하는 필요한 것을 주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늘 사용하는 생필품은 요긴하긴 하지만 누군가 선물하지 않아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물로서 마음을 전하기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채려면 시간과 노력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선물을 주는 순간과 내 정성이 조금이라도 상대의 기억에 남기 원한다면, 그리고 선물을 받는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여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봅시다. 바쁘더라도 올해는 선물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 봅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대에게 마음에 닿는 선물을 건네 봅시다. 나의 시간과 노력을 추가로 들인 만큼, 분명 상대도 더 오래 기억하고 행복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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