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스트리밍 ‘감옥’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늘 곁에 있다. 해 뜨면 신곡 발매 소식을 접하려 ‘멜론’에 접속하고, 점심엔 ‘스포티파이’의 인기 팟캐스트를 골라 재생한다. 유행이 궁금하면 ‘애플뮤직’에서 친한 친구들의 감상 리스트를 확인한다. 찾는 곡이 음원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도 걱정 없다. 만물상 ‘유튜브 뮤직’이 있으니까.
핸드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 굳이 음악을 고르지 않아도 빅데이터가 취향에 알맞은 재생 목록을 점지해 준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수백 장 명반을 ‘시식’해 볼 수 있다.
가벼워진 청취 문화는 고스란히 음악 산업에 스며들었다. Z세대 팝스타로 일약 부상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핑크팬서리스(PinkPantheress)는 최근 미국 ABC뉴스와 인터뷰에서 “더 이상 곡이 2분 30초를 넘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빌보드 차트만 돌아봐도 10위권 안에 3분 이하의 곡이 절반이다.
숏폼 시청에 익숙해진 요즘 청자가 곡을 끝까지 듣는 경우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곡 자체가 엄청 짧거나, 배경음으로 튼 뒤 끄는 걸 잊고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거나. 부담감 적은 이지리스닝과 일부러 저음질로 만들어 옛날 향수를 일깨우는 로파이(Lo-Fi) 계열 곡이 유행을 타고 있다. 음악 자체보다도 음악이 가진 분위기와 질감만을 소비하는 이용자가 급증했다는 뜻이다. 나 자신도 아무 생각 없이 처음 10초만 듣고 다음 곡으로 휙휙 넘길 때가 많아졌다. 진득히 앉아 음악을 감상하거나 한 곡을 여러 번 감상하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스트리밍 디톡스’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얼마 전 걸그룹 에스파가 정규 1집 발매와 함께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동봉한 버전을 공개하자 14만원의 고가임에도 품절 대란이 일어났다. 뉴진스가 최근 선보인 엘피 사이즈 앨범도 화제가 됐다. 유선 이어폰을 찬 길거리 행인도 많아졌다. 이런 아날로그 붐에 묘한 위안을 얻는다. 사람들도 이젠 편리함의 감옥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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