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 떠나는 ‘흙신’ 자리 그녀가 잇는다
2020년 19세 이가 시비옹테크는 프랑스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에서 우승을 확정 짓고 관중석에 있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겼다. “키우는 고양이가 TV로 이 장면을 봤으면 좋겠다”라고 해맑게 소감을 말했다. 아직은 10대 소녀 모습이었다. 시비옹테크는 이 대회를 계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폴란드 테니스 역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자. 고국에서도 열광했다.
그 뒤로도 어린 나이에 받는 압박감에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 8일 시비옹테크(23·폴란드)는 4년 전과 같은 장소인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프랑스오픈 3연패(連覇) 위업을 이뤄냈다. 결승에서 자스민 파올리니(28·이탈리아)를 상대로 세트스코어 2대0(6-2 6-1)으로 압승했다. 2022·2023년에 이어 프랑스오픈 3연패를 달성했다. 2020년을 포함하면 최근 5년간 네 번 정상. 롤랑가로스에서 극강 기량을 보여준 셈이다.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3연패는 모니카 셀레스(1990~1992년), 쥐스틴 에냉(2005~2007년)에 이어 세 번째다. 이제 프랑스오픈 클레이(점토) 코트에서 유독 강했던(14회 우승) 라파엘 나달 별명 ‘흙신’을 시비옹테크에게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비옹테크 역대 클레이코트 승률은 88.7%(142승18패), 프랑스오픈은 94.5%(35승2패)로 본인 통산 전체 승률 82.2%(344승74패)를 크게 앞지른다. ‘흙신’ 승계 자격이 있다.
시비옹테크는 2022년 US오픈 우승을 포함해 다섯 번째 메이저 정상에 등극했다. 1990년 이후 태어난 남녀 선수 가운데 메이저 5회 우승은 2001년생 시비옹테크가 유일하다. 세리나 윌리엄스(메이저 23회 우승) 이후 여자부 절대 강자가 나왔다는 분위기다. 세리나는 23세까지 메이저 6회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시비옹테크가 어린 나이에 유명해진 부담을 딛고 정상을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은 철저한 준비성이었다. 그는 이미 18세에 멘털 코치 다리아 아브라모비치를 고용했다. 시비옹테크는 “아브라모비치를 만난 뒤 테니스가 ‘멘털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기술이나 신체적인 힘뿐 아니라 어떻게 압박을 견디고 스트레스를 다뤄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기술적 향상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비옹테크는 강력한 힘과 지구력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느린 서브가 아쉽다는 지적이 많았다. 여자 평균인 시속 170~180km 정도였다. 첫 메이저 우승을 달성했던 2020년 프랑스오픈 때 평균 서브 속도 역시 175km. 이후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이번 대회 시비옹테크 서브 평균 속도는 194km였다. 남자 선수들과 비슷하다.
이번 결승에서 파올리니를 무너트린 것도 서브였다. 파올리니는 세계 랭킹 15위지만 강적들을 꺾고 결승까지 올라왔다. 빠른 발이 장기. 시비옹테크는 파올리니 빠른 발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강력하고 정확한 서브를 적극 활용했다. 네 번 이상 랠리를 거의 가져가지 않았다. 첫 세트 세 번째 게임까지 1-2로 밀렸지만 담담하게 서브 위주로 경기를 운영했고, 2세트 다섯 번째 게임까지 내리 10게임을 따내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시비옹테크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항상 압박감을 받는다”며 “하지만 외부 압력이 심해질수록 나는 더 강해진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나 스스로 믿고 반격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이제 남는 과제는 클레이코트가 아닌 다른 코트에서도 실력을 발휘하는 것. 최고 권위로 꼽히는 윔블던 잔디 코트 성적은 8강(2023년)이 가장 좋고 호주오픈은 4강(2022년)이 전부다. 잔디에서는 클레이에 비해 달리기가 더 어렵다. 지구력이 강점인 시비옹테크가 고전한다는 분석. 시비옹테크는“잔디에서 뛰는 건 매년 더 쉬워지고 있다. 해오던 걸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윔블던 대회는 오는 7월 개막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리올림픽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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