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말이·어퍼컷이 여전히 트레이드마크인가 [조선칼럼 윤태곤]
계란말이·어퍼컷·함박웃음 가득… 유출이 아니라 직접 올린 사진들
숱하게 많이 찍은 사진 중에 대중에게 보여줄 사진은 뭔가
윤 대통령은 뭘 보여주고 싶은가
대통령실을 비롯해 정당이나 기업의 공식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종종 둘러본다. 큰 행사 전후나 좋은 일로건 나쁜 일로건 화제가 됐을 때는 공식 보도자료도 확인해본다. 언론이 놓친 조각 팩트를 찾아보겠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그 조직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다. 수많은 사진 중에서 무엇을 골라서 보여주는지, 행사 현장 발언을 얼마나 어떻게 축약했는지(무엇을 뺐는지), 어떤 소식을 눈에 띄는 데 배치하고 어떤 일정을 구석에 밀어뒀는지를 살펴보면 독심술을 쓰지 않더라도 속내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실 홈페이지도 참 쓸모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일정 가운데 눈에 띄는 게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 참석이고 나머지 하나는 같은 달 24일의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살가웠지만 그 뉴스를 본 대중의 반응은 나빴다. 총선 참패 후 첫 여당 워크숍에 참석한 대통령이 “여러분을 이렇게 뵈니까 제가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그냥”이라고 분위기를 띄우고 의원들의 환호 속에서 특유의 어퍼컷을 날리는 모습을 좋아할 사람들이 많을 리가 있겠나? 대통령과 고위 참모들이 고기를 굽고 계란말이를 자르며 기자들과 박장대소를 나누는 장면도, 최근 분위기에선 박수받을 일이 아니었다.
이 두 행사에 대한 보도가 과하게 구체적인 것을 보고,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화기애애한 장면들이 참석자들에 의해 흘러나갔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어퍼컷’ 사진을 들여다보니 ‘대통령실 제공’이라는 문구가 자그마하게 박혀 있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곤 입이 떡 벌어졌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함박웃음과 긴장 없는 밝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와 있었다(대통령 주위에 서 있는 인물들은 전원 장노년층 남성들이었다). 게다가 기자단 초청 만찬 행사 사진은 30장이나 됐는데 환하고 밝음이 한층 더했다. 대통령실 전속 사진작가가 찍어서 올린 사진이 너무 선명하고 생생해서 그 속의 계란말이, LA갈비가 먹음직스러울 지경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김치찌개 레시피’ 사진은 집에서 따라 해보려고 다운로드도 받았다.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일정은 많다. 그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이 다 따라 붙는것도 아니지만 전속 사진작가와 국정 기록 담당자에 의해 대부분 갈무리된다. 대통령실은 그중에서 일부를 선별해서 공개한다. 의도치 않게 유출되거나 언론이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주체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대통령의 의중과 국정 기조를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발언과 사진들일 것이다. 또한 대중이 그걸 보면 좋아해서 지지율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고심해서 고른 것들일 테다.
현 대통령실이 제공하는 자료를 보면 윤 대통령은 흥이 많고 낙천적인 분위기 메이커다. 김건희 여사가 나온 사진들은 여전히 화보집 느낌이 든다. 바닥을 모르는 지지율, 본인과 부인을 향하고 있는 초거대 야당의 압박, 지리멸렬한 여당 상황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실이 보여주는 그 모습을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실제 모습과 보여주는 대통령의 모습이 다른 것도 문제다. 그런데 ‘이런 것을 국민들과 언론이 좋아하겠지, 대통령의 이미지 제고와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겠지’라고 판단해서 보여주는 모습이 역효과만 낳는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현실 파악이 완전히 잘못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치적에 비해 이미지가 좋은 지도자 중에선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윗길에 꼽힌다. 따뜻하고 소탈하며 공적으로는 단호하고 엄격한 그 이미지 구축에는 전속 사진작가였던 피트 수자 덕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 빈 라덴 제거 작전 상황실 한쪽에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 연설 연단 위로 뛰어 올라가는 힘찬 뒷모습, 백악관 복도에서 히스패닉 청소부와 주먹을 맞대는 모습, 공식 행사 테이블 아래로 맞잡은 대통령 부부의 손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절묘하고 때로는 심금을 울리는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피트 수자였지만 그가 8년간 찍은 200여 만 장의 사진 중 ‘대중에게 보여줘야 할 것’을 고른 사람은 오바마 홍보팀이었다. 초짜 상원 의원 시절 피트 수자를 처음 만나 함께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나간 사람은 오바마 본인이었다.
그렇다면 계란말이, 어퍼컷, 술잔을 아직도 대한민국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로 밀고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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