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없는 베트남 올까? [사이공모닝]
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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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베트남 호찌민에서 밥을 먹다가 창문 밖에 보이는 ‘이것’을 보고 “우와!”하는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바로 베트남 호찌민 최초의 지하철 1호선이 선로 위에 놓인 모습입니다. 시범 운행을 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열차 차량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일행들은 “이걸 신기해하는 네가 더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지하철이 곳곳에 깔린 서울에 사는 사람이 뭘 신기해하느냐는 거였지요. 하지만 매번 미뤄지던 호찌민 지하철 1호선을 실제로 보다니! 안될 거라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 벌어지면 저 같이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이공모닝> 구독자님들은 ‘베트남’하면 뭐가 생각나시나요? 도로를 빽빽하게 메운 오토바이부터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세계 4위의 오토바이 시장인 베트남은 ‘오토바이의 나라’라고 불리기도 하죠. 작년 보내드린 뉴스레터 <기상천외한 ‘두 바퀴’ 오토바이 사용법>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작은 오토바이에 수백 봉지의 과자와 라면을 싣거나 성인 남성 4명이 작은 오토바이 한 대로 도심을 휘젓는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나라이니까요.
그런데 오토바이가 주요 이동수단이었던 베트남에서 ‘대중교통’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2년 전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베트남 최초의 지하철인 하노이 지하철 2A 호선 깟린-하동 노선이 개통됐고, 남부 지역의 경제 도시 호찌민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 있게 될 예정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오래전부터 오토바이 운행을 제한하는 정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에 사람과 오토바이가 몰리면서 대기오염과 교통체증 등의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이죠. 베트남 정부는 ‘오토바이 퇴출 정책’도 시행 중입니다. 2017년 빈 패스트라는 베트남 최초의 완성차 업체를 만들고, 지하철을 만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대중교통이 발전하면 ‘오토바이의 나라, 베트남’이라는 말은 사라지는 걸까요? 오토바이가 국가의 정체성으로까지 여겨지는 상황에서 이를 탈피하려는 베트남 정부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또다시 미뤄진 호찌민 지하철 개통
제가 반가워했던 호찌민 지하철 1호선을 올해 안에 직접 타보는 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4분기부터 정식으로 상업 운행하려던 호찌민 지하철 1호선 개통이 또 미뤄질 거란 소식이 들려오고 있거든요. 호찌민시 도시철도관리위원회가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에 “지하철 1호선 완공 지연에 따른 4조동(2176억원) 규모의 추가 비용을 두고 주 계약 업체인 일본 히타치와 갈등을 빚고 있다”고 보고했다는 현지 언론의 기사도 나왔습니다. 운행 계약 업체인 일본 히타치가 “사업 기간 연장으로 발생한 총 비용을 보전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호찌민시 도시철도관리위원회가 “계약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본격적인 운행을 앞두고 이런 갈등이 벌어진 이유는 사업 일정이 수차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호찌민 벤탄-수오이띠엔을 잇는 19.7km 구간에 지하역사 3개, 지상역사 11개 등 총 14개 역이 들어서는 호찌민 지하철 1호선은 2007년 사업 승인을 받았지만 5년 뒤인 2012년에야 착공을 했습니다. 코로나 기간 해외 기술자들이 입국하지 못하면서 준공 시기도 2년가량 연기되다가 작년 8월에야 시험 운행을 했습니다. 현재까지 43조7000억동(2조3772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이죠.
전기기계·장비, 전동차, 철로, 인력교육 및 유지보수를 맡은 히타치는 “사업 기간이 연장된 것에 따른 지체보상금과 추가 비용을 달라”고 요구하며 부당하게 연장된 공사 기간을 4124일로 산정했으나 외부 컨설팅 업체는 그 기간을 2161일이라고 봤습니다. 늘어난 공사 기간만큼 보전받을 수 있는 비용도 늘어나는 건데, 훨씬 더 짧게 본 거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히타치가 베트남 국제중재센터에 호찌민 도시철도관리위원회를 상대로 5270억동(286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공정률 98%를 달성한 호찌민 지하철 1호선이 또다시 운행 계약업체와 갈등을 빚는단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올해 안에 지하철 타긴 어렵겠다”는 전망을 내놓습니다.
조만간 이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인 수오이띠엔 역에 가서 테마파크를 가겠다는 저의 계획도 미뤄졌습니다. 종착역 근처에는 엄청나게 큰 악어농장과 워터파크가 있는 놀이공원 있는 ‘수오이띠엔 테마파크’가 있거든요. BBC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놀이공원 7선’에 선정했던 곳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호찌민 도심을 지나 놀이공원을 가겠다는 목표는 잠시 보류입니다. 아쉽게도요.
◇대중교통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호찌민의 상황과 달리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선 2년 전 개통된 베트남 최초의 지하철이 열심히 승객을 실어나르고 있습니다. 일일 이용객은 3만5000명 수준이고, 전체 이용객의 70%가 월 정기권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지하철을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이 몰렸던 초창기와 달리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지요.
해당 지하철을 운영하는 하노이메트로가 조사한 결과, 전체 이용객의 60%가 오토바이를, 18%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지하철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용 승객의 92%가 탑승 이유를 출퇴근과 등학교 목적이라 답했습니다. 작년, 지하철 이용객은 1070만명으로 전년 대비 31% 증가했지요.
베트남 정부는 최근 오토바이 운행 금지를 다시 한번 예고했습니다. 베트남 정부가 오토바이 운행 제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민들의 반대와 항의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는 거죠. 하노이시 12개 지역과 3개의 주요 도로에서 오토바이 운행을 금지하고, 2030년부터는 하노이 전 구역에서 오토바이 운행과 진입을 금지한다는 계획입니다.
베트남 도로교통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오토바이 등록 대수는 약 6500만대입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숫자이지요. 무작정 오토바이 이용을 막기엔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아직까진 대중교통 이용률이 10%도 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이지요.
하지만 베트남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베트남 대기 오염의 40%가 오토바이 같은 교통수단의 매연에서 비롯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지요. 하노이시는 2027년, 호찌민시는 2030년 지하철 1개 노선을 추가 개통한다는 계획입니다. 지하철 노선 수가 늘어나고, 역과 역 사이를 잇는 버스 같은 게 마련되면 대중교통이 오토바이를 대체할 이동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지하철 노선 하나 만드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베트남이지만, 정부의 의지에 따라 일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도 베트남인 게 사실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놀이공원에 가는 날이 언제가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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