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23] 연애의 법칙

문태준 시인 2024. 6. 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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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연애의 법칙

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우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던

하얀 발가락으로

우리는 세계의 배꼽 위를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

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

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 선수처럼

-진은영(1970~)

향기가 백 리를 간다는 백리향 잎을 만지던 손가락으로 연인의 목덜미를 가볍게 쓰다듬어 만지는, 이 시의 도입부는 감미롭고 아름답다. 그 향기는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의 빛나는 시간에 은은하게 머물 것이다. 이 사랑 행위는 시인이 시 ‘청혼’에서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라고 쓴 시구와 마음의 결을 같이 한다. ‘너’와 ‘나’는 모래집과 모래 무덤처럼 허물어지고 흩어질 유한한 존재이지만, 혼곤한 잠에 든 지친 영혼을 곁에서 지켜줄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의 첫 결심과 지속이 헛헛함과 고독을 다 채워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천장에 매단 샌드백이 흔들리며 덩그러니 제 쪽으로 돌아올 적에 그것을 껴안고 탄식하듯 주저앉는 권투 선수 처지가 되기도 할 것이다. 연애에는 사랑에 대한 믿음의 센 근력, 애씀, 감정의 다툼, 좌절이 함께 들어 있다. 이것을 잘 알기에 시인은 시 ‘청혼’에서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이라고도 노래했을 텐데,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의 감정을 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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