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한국말로 피해 호소 막막한데…‘잠재적 범죄자’라뇨
“비자 못받고 추방 당할까
피해자가 신고 꺼리기도”
“소수자라 더 쉽게 범죄 노출
한국 법·제도 알릴 창구를”
“고용허가제로 올해 60만명의 이주민이 더 들어온다고 하는데, 오히려 불법으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고민이에요. 지금도 성폭력 당해도 회사 못 옮기는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제도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중랑구에 있는 ‘생각나무 비비(BB)센터’에서 만난 안순화 센터장은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민 자체가 소수자지만, 그중에서도 아시아계나 여성 이주민은 더욱 소수자여서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 국적인 안순화 센터장은 2003년 한국으로 와, 한국에서 22년째 살고 있다. 다양한 이주민에게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2009년 센터를 설립해 16년째 활동 중이다. 그는 특히, 예상치 못하게 범죄에 연루되고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조차 방향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주민들이 당하는 범죄의 대부분은 사기다. 한국말이 서투르고 정보도 부족한데다, 낯설고 외로운 땅에서 누군가 다가오면 믿어버리기 십상인 탓에 이들은 한국인보다 사기 범죄에 더욱 취약하다.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이레샤 페레라 톡투미 대표는 “말도 능숙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제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못하다 보니 살아가면서 더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12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중국인 왕아무개(45)씨는 “4년 전 사기를 당하고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어버렸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2020년, 15년 동안 알고 지낸 중국인 지인으로부터 ㄱ씨를 소개받았다. ㄱ씨는 자신을 국회 부의장실에서 정책특보로 일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는 동생 ㄴ씨가 유명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데, ㄴ씨를 통하면 명품 시계를 정가보다 30% 이상 저렴한 2천만원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큰돈이었지만, 왕씨는 평소 갖고 싶었던 명품을 그나마 싸게 가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무리해서 돈을 마련해 ㄴ씨에게 건넸다. 그러나 ㄴ씨는 시계 주는 날을 차일피일 미뤘다.
2년여가 지난 2022년, 그는 ㄴ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 또한 고난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말이 능숙하지 않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가장 답답했다. 서울 관할이었던 사건은 피고소인 ㄴ씨가 사는 부산으로 옮겨졌지만, 수사가 어떻게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왕씨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못 듣고 있다.
왕씨의 경우처럼 이주민들은 범죄 피해를 구제받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변호사나 피해자가 통역인을 구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며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운영하는 다누리콜센터에서 3자 통역을 쓰거나,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사법 통역이 일반 통역과는 다른 분야다 보니 제대로 조력을 받는 게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주민의 주장을 제대로 듣지 않고 기계적으로 기소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진혜 변호사가 법률 지원을 한 사례다. “가정폭력 가사사건 중에는 가해자인 한국인 배우자가 ‘나도 폭행을 당했다’며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기계적으로 쌍방폭행이 된다”며 “자동차 조수석에서 아기를 안고 있던 이주민 아내가 (남편한테 폭행을 당하다) 남편이 앉은 운전석 쪽으로 물티슈를 던졌다가 쌍방폭행으로 기소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무죄를 받았지만 정말 기소된 게 신기한 사건이었다.”
자신이 피해자라도, 비자를 연장할 때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아예 처음부터 신고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조사가 진행 중이거나 기소유예되면, 유죄 판결을 받는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법무부 시스템에 뜬다. 이럴 경우 체류 변경이나 국적 취득, 비자 연장 등을 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이렇다 보니 폭행을 당해도 쌍방폭행으로 인정될 것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외국인등록증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은, 폭행 등 범죄 피해를 입어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미등록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더욱 신고를 꺼린다. 경찰은 ‘통보의무 제도’에 따라 미등록 외국인을 발견하면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알려야 하고, 법무부는 통보받은 이들을 본국으로 추방하기 때문이다. 안순화 센터장은 “미등록자들은 잡히면 집에 가야 하니까 조용히 산다. 오히려 사기꾼들이 미등록자라는 신분을 악용해 시비를 걸고 나쁜 짓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매년 이주민 수가 증가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관련 통계는 전무하다. 그나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격년으로 벌이는 전국범죄피해조사가 ‘국적’을 표기하도록 해놓았다. 한겨레가 2020년 전국범죄피해조사 통계 중 이주민들이 답변한 통계를 따로 뽑아 분석한 결과, 국내 체류 이주민들이 느끼는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 ‘밤에 혼자 동네 골목길을 걸을 때 두려운지’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주민의 비율은 20%(매우 그렇다 2%, 그런 편이다 18%)로 전체 평균인 13%(매우 그렇다 1%, 그런 편이다 12%)에 비해 7%포인트 더 높았다. 또한 ‘내가 범죄피해를 당한다면 다른 사람에 비해 피해 결과가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도 이주민 응답자는 25%(매우 그렇다 2%, 그런 편이다 23%)로 전체 평균인 9%(매우 그렇다 1%, 그런 편이다 8%)의 세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었다. ‘누군가 나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할까 봐 두렵다’에 그렇다고 답한 이주민 응답자 비율도 11%(매우 그렇다 0%, 그런 편이다 11%)로 전체 평균(매우 그렇다 1%, 그런 편이다 6%)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이주민을 여전히 잠재적 범죄 가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범죄와 형사사법 통계정보 누리집을 보면 ‘외국인 범죄에 대한 오해와 편견’ 설문조사에 ‘외국인은 내국인보다 더 위험하다’에 48%가 ‘그렇다’, 10%가 ‘매우 그렇다’고 답하는 등 50% 이상이 ‘외국인은 위험하다’고 답했다.
안순화 센터장은 “고향에서는 되는데 한국에서는 안 되는 법과 제도들이 있고 이런 것들을 몰라 범죄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며 “한국의 정책과 제도가 어떤지에 대해 많은 교육이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여건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가 올해 통역, 한국어 교육, 노무·법률 상담을 해온 전국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이주민들이 편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더욱 줄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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