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최전방서 ‘자유의소리’ 재송출… “추가 방송 北에 달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강대강 치닫는 南北
1963년 시작… 정세따라 중단·재개
2018년 판문점 선언 직후 ‘창고行’
北 내부 흔들 치명적인 심리전 수단
고정식 가동… ‘9·19’ 정지 등 전해
2부선 ‘볼빨간 사춘기’ 노래 틀어
北도 ‘대남 확성기’로 맞불 가능성
南北 군인, 피로감에 충돌 우려도

정부가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 재개에 맞서 9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했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 직후 중단했던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던 심리전 수단이다. 확성기 방송 재개를 계기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사진=뉴스1

◆풍선에 확성기까지… 양측 모두 강대강 대치

북한의 세 번째 오물풍선 살포와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결정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북한은 지난 2일 국방성 부상 담화를 통해 오물풍선 살포 잠정 중단 방침을 밝히면서 대북 전단살포가 재개되면 다시 뿌리겠다고 위협했다. 정부도 지난 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이 대응책을 공개해 놓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남북 모두 대내외 메시지와 정책의 일관성·신뢰성에 상처를 입게 된다. 8, 9일 북한이 세 번째로 대남 오물풍선을 띄우고,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강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심리전이지만 일종의 치킨 게임을 보는 것 같다”며 “남북이 심리전에 대해 강대강으로 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결정에 따라 군은 이날 오후 최전방 지역 여러 곳에서 확성기 방송을 실시했다. 군은 북한의 향후 도발 강도에 따라 추가 방송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이 또다시 오물풍선 등 심리전으로 도발해온다면 우리 군도 이에 맞춰 더욱 강력한 확성기 방송을 가동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형 확성기 점검하는 軍 합동참모본부는 9일 오후 최전방 지역에서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군은 앞서 지난주 대북방송 재개를 위해 확성기 이동과 설치, 숙달 등을 위한 일명 ‘자유의 메아리’ 훈련을 실시했다. 사진은 군 장병들이 훈련 과정에서 이동형 확성기를 점검하는 모습. 합참 제공

이날 재개된 확성기 방송은 국군심리전단이 운영하는 ‘자유의소리’ 라디오를 재송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대북 확성기는 최전방 10여곳에 고정식으로 설치되어 있고 이동식 장비도 40여대가 있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라 고정식 확성기는 철거돼 창고에 보관 중이고, 이동식 장비는 인근 부대에 있다.

군은 정부가 9·19 합의 효력을 중지시켰던 지난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자유의 메아리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이 시행된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훈련은 군이 보유한 이동식·고정식 장비를 점검하고 실제 상황을 가정해 배치하는 절차를 익히는 것이다. 1963년 5월1일 서해 쪽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남북 군사합의로 중단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천안함 피격(2010년)과 북한군 지뢰 도발(2015년),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등에 대한 조치로 일시 재개됐다.

◆오후 5시 애국가 나온 뒤 방송 시작

이날 오후 5시쯤 경기 파주시 탄현면과 강원 춘천시 등에서는 애국가가 흘러나온 뒤 “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실과 희망의 소리를 전하는 자유의 방송을 지금부터 시작하겠다”는 내용의 라디오방송이 시작됐다.

아나운서는 첫 번째 소식으로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9·19 군사합의 전부 효력정지안을 재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어 한국과 미국,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이사회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끊이지 않는 미사일 도발,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했다는 뉴스를 전달했다. 세 번째 소식으로는 삼성전자의 지능형 손전화기(휴대폰)가 전 세계 38개 국가에서 출하량 1위를 차지했다는 산업계 동향을 전달했다.

네 번째 소식은 ‘외부 영상물 시청 및 유포에 관한 단속과 검열이 돌연 강화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북한 주민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약 30분 분량 1부 보도 광장이 끝나고 5시45분부터는 2부 ‘서울말과 평양말의 차이’를 해설하는 방송과 함께 중간중간 그룹 ‘볼빨간사춘기’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자유의 메아리’ 훈련 실시 합동참모본부는 대북방송을 즉각 시행하는 상황에 대비해 전방지역에서 실제훈련을 실시했다고 9일 밝혔다. 2018년 이후 실제훈련은 처음이다. 사진은 군 장병들이 지난주 군에서 실시한 대북방송 실시 대비 실제훈련에서 확성기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합참 제공

접경지 주민들은 평온 속 긴장감을 토로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비무장지대(DMZ) 마을인 파주시 대성동 마을의 김동구 이장은 “주민들은 TV를 보면서 상황을 주시하는 것 외에 특별히 달라진 것 없이 평소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이장은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응해 북한이 대남방송을 재개하면 대성동과 통일촌 마을 주민들은 주간은 물론 야간에도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서해5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에 거주하는 주민 박모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라 생각해 과감하게 대북 확성기 방송도 해야 한다”며 “뒤로 물러날수록 북한은 공세로 나오기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김남명 이장은 “대북 확성기 재개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생업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현재 대부분은 차분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면서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며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확성기 방송에 맞서 대남 확성기 방송 카드를 꺼낼 수 있다. 남측의 행동에 비례적으로 맞대응하면서도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이 있는데 그것부터 할 가능성이 있다”며 군사적 위협을 가해올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위성항법체계(GPS)에 대한 전파 교란을 강화하거나 오물풍선을 추가로 살포할 가능성 등도 거론된다.

박수찬·정지혜·김병관 기자, 파주·고성=오상도·배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