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밀양과 청도의 시골마을 논밭과 주변의 산꼭대기에는 76만5000볼트라는 무시무시한 고압이 흐르는 전선을 받치는 40층 아파트 높이의 거대한 송전탑이 있다. 이것이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고 2005년부터 온몸을 던져 싸워온 여성 농민 어르신들이 계신다. 수도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만4000볼트의 송전탑이 2차선 도로라면 이 송전탑들은 36차선급이라니 무서운 규모다. 흐르는 전압이 워낙 높아 해외에서도 사막이나 산악지대같이 민가가 없는 곳에나 세운단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해당 지역 주민들을 기만하고 이간질시키고 그래도 안 되니 국가전력수급 안정화라는 이유를 들며 2000여명이나 되는 경찰을 동원해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맨몸으로 저항하는 할머니들을 경찰이 질질 끌어내던 국가폭력의 현장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난 6월8일, 밀양 응천강변에서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을 돌아보며 윤석열 정부의 ‘핵폭주정책 원천봉쇄 결의대회’가 열렸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밀양과 청도의 초고압 송전탑은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와 효암리 일대에 들어서 있는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수도권으로 송전하기 위해 건립됐다. 그렇기에 전기를 만들어 보내기 위해 파괴되고 있는 전국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모여든 것이다. 핵발전소가 이미 들어서 있거나 들어설 예정인 곳, 석탄발전을 대체한다며 산과 들을 마구 헤집고 자리 잡은 태양광 시설과 섬을 사방으로 에워싸며 급기야 앞바다 돌고래들의 주요 주거지까지 파괴하면서 풍력발전 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곳 등이다. 그날 발언들에서 반복적으로 나온 말은 바로 ‘농촌의 식민지화’였다.
식민지란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을 자신이 조달하지 않고 남을 수탈해 조달하는 행위가 일어나는 관계성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16세기 이래 유럽 국가들에 의해 자행된 식민지 노예무역과 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존재한 식민지들이 그런 관계 안에 놓여 있었다. 민족이나 인종 간의 식민화에 더해 한 성별 집단이 다른 성별 집단의 노동과 생산물과 기력을 수탈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밀양에서 외쳐진 ‘식민지’라는 말은 이런 관계가 결코 지나버린 과거만은 아니라는 경각심을 일으켜준다.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성장을 위해 이와 같은 반복되는 식민지화에 의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면 이런 시스템을 계속 신뢰해도 괜찮을까? 이것은 누가 웃고 누가 우는 체제인가?
무시무시한 송전탑들이 골골이 들어선 밀양시의 외곽 마을은 송전탑이 없다면 맑은 천과 산세가 수려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이다. 할머니들은 여성 농민으로서 부지런히 주거지를 가꾸고 밭을 일구고 마을을 돌보는 소중하고 고마운 생태주민들이다. 이런 곳에 76만5000볼트가 흐르는 송전탑이 왜 들어서 있는가?
경제와 전력수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까봐 나는 너무 무섭다. 남의 눈에 흐르는 피눈물을 웃는 얼굴로 볼 사람일 것 같아 그렇다. 우리나라의 행정수반이 남의 눈에 흐르는 피눈물을 웃는 낯으로 보는 사람일까봐 문득 또 무섭다. 전기는 오늘도 눈물을 타고 흐른다. 대안은 분명 있을 것이다.
박이은실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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