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수사방해죄 신설에 반대한다
수사를 당해본 사람들은 알아
수사기관이 허위 아닌 진술을
허위라고 한다면 어쩔 것인가
사법시스템 농락 악인 많은 세상
벌주는 법은 적을수록 좋아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씨의 증거인멸 등 행위가 사법방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그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그의 공권력 행사 방해행위를 보고 일부 언론에서 사법방해죄를 도입하자는 사설과 칼럼이 나온 점이다. 사법방해가 이슈로 등장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일례로 2023년 9월21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요청 국회 연설 때 이 대표의 ‘사법방해’를 네 차례나 언급했다. 요즘 문제되고 있는 채 상병 사건에서는 국방부가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하거나 기록을 회수한 것이 경찰 수사에 대한 방해라는 주장도 나와 있다.
사법방해죄는 본래 미국법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광의로는 ‘폭력 행위, 부정 행위, 증거인멸 행위, 속임수 등으로 정부의 목적을 좌절시키는 행위’라고 정의되나, 형사사법에서는 사법경찰관이나 검사에게 허위로 진술하거나 증거를 조작·은닉하는 행위, 배심원 등에게 해를 끼치거나 회유하는 방법으로 사법절차의 적정한 집행을 방해하는 행위 등을 뜻한다. 연방법의 예를 보면 사법방해는 무려 22개의 조문에 의하여 규율되고 그 규정 내용도 위헌 시비가 나왔을 만큼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직수입할 것이 못 된다.
법무부는 2002년 사법방해 중 수사방해를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 초안을 내놓았다. 처벌 대상 행위는 수사단계에서 참고인의 허위 진술과 허위 자료 제출이었다. 그러나 법원, 변협, 시민단체 등이 반대하였고 개정 시도는 무산되었다. 2010년에도 허위 진술만을 대상으로 하고 구성요건을 다소 달리한 개정 초안이 나왔지만 역시 불발되었다.
혹자는 “사법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절차다. 이런 사법의 본질을 훼손하는 수사·재판의 방해 및 지연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범죄적 행위”라면서 사법방해죄의 도입을 주장한다. 자못 근사하게 들리지만, 그렇다고 수사방해죄의 신설에 찬성할 수는 없다. 형사사법제도의 근본적 구조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교과서의 정의로 보면, 수사는 범죄의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다. 인지사건에서는 물론이고 고소사건에서도 수사기관의 일차적 목표는 유죄의 증거를 수집하여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데 있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수사기관이 허위 진술 또는 허위 자료라고 지목하는 것은 유죄의 증거에 배치되는 증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허위 여부를 판단하여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일차적 주체는 다름 아닌 수사기관이다. 만약 수사기관이 허위 아닌 진술을 허위라고 하면 어쩔 것인가. 수사를 당해 본 사람은 안다. 상대는 국가권력을 위임받아 손에 쥐고 있는 수사기관이다. 이를 대하는 무력감과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형사사법의 실제에서 변호사들이 “검사는 몽둥이로 싸우고 피고인은 맨손으로 싸운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에서 피의자를 위해 진술하거나 증거자료를 내려는 사람이 허위 진술 등의 혐의를 받아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과연 누가 나설 것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뭐가 걱정이냐고? 글쎄, 문제는 당장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주체가 바로 수사기관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나 스스로 실제로 당해 보지 않고서 근사한 말을 하며 자족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알아들을 것인가. 2021년 11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가 대학생들 앞에서 한 발언 중 일부를 옮겨 본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상대방으로 만나면, 몇년 동안 재판을 받아서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은 절단납니다.” 숙련된 검사일 것도 없다. 경찰관이든 검사든 수사담당자가 일단 누군가의 진술을 허위로 지목하면, 그 진술이 있었던 사건의 운명은 보나마나다. 더욱이 무죄 선고 운운하지만, 2022년 제1심 공판사건의 처리 통계로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비율은 3.4%(인원 수 기준) 정도다. 아닌 게 아니라 일단 기소되면 인생이 절단나는 것이다.
유죄의 증거에 배치되는 다른 진술이나 서류가 나오면 이를 물리칠 만한 또 다른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정도(正道)이지, 그런 진술 등을 허위라고 하여 처벌의 위협을 가하는 것이 정도일 수는 없다. 사법 시스템을 농락하는 악인이 많은 세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억울한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 내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 풍진 세상,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렵다면 한마디만 더 하겠다. 벌 주는 법은 적을수록 좋다.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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