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갑상선암 산재 승인 9년째 포기하지 않는 이유
활선작업을 하며 특고압 전자파에 노출돼 발생한 갑상선암이 업무상 재해라는 1심 판단을 2022년 받았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했고, 11일 2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1998년부터 전봇대에 올라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전선 교체 등을 하는 활선전공으로 일했다. 2년 주기로 한국전력으로부터 낙찰을 받는 업체 소속이었다.
출퇴근 시간은 따로 없었다. 대략 오전 7시30분에 나와서 오후 9시 정도에 집에 도착하고, 밥숟가락 놓으면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2009년 민주노총 광주전남전기지부가 배전업체들과 임단협을 맺어 출퇴근 개념이 생기기 전까진 해가 떠 있는 동안엔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현장에 있었다.
2015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을 확인하고 수술을 받았다. 이듬해 산재 신청을 했다. 주변 동료들은 큰 병에 걸려도 ‘어차피 해봐야 안 되는 것 같다’며 산재 신청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암 발병 전이나 지금이나 술, 담배는 거의 안 한다. 갑상선암 발병은 2만2900볼트 특고압 전자파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다.
갑상선암에 걸리고 나니 배전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을 하는 활선전공으로 일했다는 것이 후회가 됐다. 배전 현장엔 활선차량 버킷에 올라 살아 있는 전선을 다루는 활선전공과 전기가 끊어진 상태에서 일하는 사선전공이 있다.
전봇대 위 전선에 다가가기만 해도 밀어내는 느낌이 온다. 일하는 중간중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하다. 습도가 높을 땐 온몸의 털이 선다. 어깨까지 오는 고무로 된 절연장갑과 절연화가 ‘절연’ 보호구의 전부였다. 방염복은 절연 기능이 없다. 그나마도 한국인 체형에 맞지 않아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고무소매를 착용하고, 서커스 곡예하듯 좁은 공간을 잘 드나들어야 살아 있는 전선이 몸에 안 닿는다.
전봇대 사이를 잇는 전선은 세 가닥이다. 전선과 전선 사이는 60~90㎝ 정도다. 한전이 채택했던 직접활선공법(무정전 이선공법)은 세 가닥 중 작업을 하는 한 가닥의 전기만 끊는 방식이다. 활선전공은 전기가 흐르는 전선인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아차’ 하는 순간 화상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일하면서 두 번의 감전 재해를 목격했다. 재해를 당한 두 동료 모두 팔, 다리 등 신체 일부를 잘라야 했다.
한전은 2016년 재해 위험이 큰 직접활선공법을 폐지하고 도구를 이용한 간접활선공법을 도입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배전 노동자의 갑상선암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고, 직접활선공법에 따른 전자파 영향 근거를 노동자더러 제시하라고 했다. 묻고 싶다. 한강성심병원에서 365일 배전 노동자의 곡소리가 울릴 때, 공단은 무얼 했단 말인가. 폐지된 공법에 대한 자료를 노동자가 어떻게 제시하란 말인가. 전봇대 위 전선엔 2만2900볼트가 흐른다는 건 명백한 것 아닌가. 1심 판결도 배전작업 내용과 유해인자(극저주파 전자기장 및 스트레스)에 노출된 정도, 극저주파 자기장의 유해성에 관한 연구 결과 등을 근거로 들며 산재를 인정했다.
신체를 잘라야 하는 재해를 당하면서도 전선을 만져 세상에 불을 밝힌 이들이 있다. 산재보상은 우리 사회가 노동존중으로 나아가는 당연하지만 큰 걸음이다.
김정남 배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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