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월남전과 유행가

기자 2024. 6.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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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 60주년을 맞았다. 1964년 파병이 시작되어 총 34만명의 군인들이 전쟁터로 떠났다. 그중에서 5000여명의 청춘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베트남보다 월남(越南)으로 불리던 시절, 부산항은 떠나고 돌아오는 군인과 가족들로 늘 부쩍거렸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우리 군대가 용병(傭兵)으로 참전한 전쟁이었지만 당시엔 정보가 막혀 있었다. 전쟁 당사자였던 미국에서는 밥 딜런 등 젊은 포크가수들이 반전가요를 불렀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건전가요풍의 유행가가 대부분이었다. 비둘기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 십자성부대, 백마부대 등 병과에 따라 파병 부대의 이름도 다양했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맹호는 간다’)

유호 작사, 이희목 작곡의 노래로 당시 공보부가 주도하여 만들었다.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와 어린아이들도 따라 부를 정도였다. 많은 가수들이 부산항에서 유서를 쓰고 위문공연을 위해 배에 오르기도 했다. ‘월남의 달밤’ ‘월남 가신 우리 아빠’ ‘월남에서 온 편지’ ‘월남에 가신 우리 오빠 안녕’ 등 퇴행적인 유행가가 파월 장병과 그 가족들을 위로했다. 그래도 김추자(사진)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능가할 곡은 없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야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굳게 닫힌 그 입술/ 무거운 그 철모/ 웃으며 돌아왔네/ 어린 동생 반기며/ 그 품에 안겼네…’

신중현이 만들어 1969년 데뷔 앨범에 넣은 이 노래로 김추자는 스타덤에 올랐다. 한동안 삼촌들의 사랑을 받는 최고의 가수로 군림했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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