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국가인권위마저 망가뜨리려고 하는가
올해 들어 국가인권위원회에 갈 일이 많아졌다. 트랜스젠더 학생을 배제하고 개인정보를 노출시키는 OMR 성별표기 차별 진정 처리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차별팀’을 방문했고,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의료 차별 개선을 위해 발표된 정책권고(2018) 이행 방안을 협의하려 ‘차별시정과’를 방문했다. 최근에는 변희수재단 법인 설립 허가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행정법무담당관’과, 서울퀴어문화축제 참여 협의를 위해서 ‘홍보협력과’와 소통하기도 했다.
정말 다양한 목적과 이유로 방문하고, 협의하고, 때로 요구하기도 한다. 아쉬운 점이 왜 없겠는가. 민감한 쟁점을 회피하거나 진정 사건이 이유 없이 지연되는 경우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목소리 높이고 항의도 한다. 그 이유는 인권위가 ‘인권의 시각에서’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해 판단하고, 인권·시민사회 단체와 협력하는 등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권위의 주요 사안을 검토하고 결정을 내리는 ‘인권위원’ 일부가 혐오 발언을 일삼고 인권의 원칙을 짓밟는 일에 앞장서고 있어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충상 상임위원(국민의힘 지명)은 ‘게이들은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는 등의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며 인권위에 진정당하는 ‘당사자’가 되기도 하였고, 최근 법원의 결정으로 해당 발언이 ‘명백한 혐오’임이 재차 확인되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논리로서 ‘남성 성기를 제거하지 않은 사람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올 수 있다’는 등의 모욕적인 발언을 하며 인권위에서 성소수자 혐오 선봉장을 자처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가 되는 인권위원들이 임명되니 인권이 속수무책으로 지워지고 있다. 최근 인권위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제출할 인권위 독립보고서 안건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동성 간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하고 있는 군형법 제92조의 6(추행죄) 폐지 권고를 최종적으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김용원 상임위원(대통령 지명)은 군형법상 추행죄가 ‘고문’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국제인권기준에 대한 무지함을 스스로 드러냈다. 지난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인권위 독립보고서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가 빠진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권위원들의 반인권적인 행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일이다. 9월이면 현 인권위원장 임기도 종료된다. 망가져가는 인권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분노할 일인데, 여성가족부처럼 장관조차 임명하지 않는 부처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인권의 원칙을 기준으로 모든 사안을 판단해야 할 이들이 누구보다 정치에 흔들리고 혐오에 앞장선다면, 인권위 존재 의미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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