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휴대용 재떨이

김태훈 논설위원 2024. 6. 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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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흡연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길에 꽁초 버리는 걸 볼 수 없다. 꽁초를 휴대용 재떨이에 넣는 장면만 나온다. 온갖 나쁜 짓 다 하던 야쿠자가 꽁초만은 휴대용 재떨이에 담아 가져가는 조폭 영화도 있다.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는 생활 태도가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결과다. 우리는 그 반대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은 드라마 흡연 장면조차 모자이크 처리하는 나라가 현실에선 아무 데나 꽁초를 버리는 걸 보고 놀란다고 한다.

▶결국 나라 밖에서 망신을 샀다. 일본 쓰시마 섬의 한 신사가 한국 관광객 출입을 금지했다. 일본 신사에서 흡연은 조례로 금지돼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한국에서 하던 대로 담배 피우고 꽁초를 버렸다. 일부는 침까지 뱉었다고 한다. 여러 번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아 “한국인 출입 금지를 풀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일본 곳곳에서 일부 한국인의 꽁초 투기 행태가 손가락질당한 지 오래다. 오사카의 어느 음식점 사장이 “꽁초를 버리는 한국 손님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한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

▶한국도 꽁초를 무단 투기하다 걸리면 처벌한다. 그러나 벌금 5만원이 고작인 솜방망이 제재고 실제론 못본 척 눈감아 준다. 나라 밖에서 그랬다간 큰 봉변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미국 일부 주와 싱가포르에서 꽁초를 버렸다가 걸리면 우리 돈 약 200만원을 내야 한다. 일본은 처음엔 우리 돈 1만원 정도로 가볍게 제재하지만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 최대 1억원 이하 벌금이나 5년 이하 징역으로 엄벌한다.

▶2022년 여름 홍수 때 서울 시민 여럿이 목숨을 잃었다. 비가 많이 온 탓도 있지만 꽁초가 빗물받이를 막아 피해를 키웠다. 서울에는 약 55만개의 빗물받이가 있는데 담배꽁초가 배수로를 막아 제 구실을 못 한다. 배수로 쓰레기의 70%가 담배꽁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빗물받이 3분의 2가 막히면 침수 높이가 그렇지 않을 때의 두 배로 올라간다. 이는 반지하 가구에 큰 위협이다. 꽁초 투기를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악습으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연간 담배 소비량의 절반인 320억개가 꽁초로 버려진다. 일부 흡연자는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도록 쓰레기통을 충분히 설치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담배 쓰레기통은 주변을 흡연장화하고 악취를 뿜는다는 이유로 반발도 크다. 애완견이 늘면서 휴대용 배변봉투가 정착했다. 꽁초도 휴대용 재떨이를 지니고 다니며 각자 처리하는 시민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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