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도 바다도 아닌 하늘에서?…풍력발전기의 새바람
무인기 모양 풍력발전기 개발
줄에 동체 매달아 하늘로 띄워
바람 타고 비행하며 100㎾ 생산
기존 발전기에 비해 용량 턱없지만
산·바다 해치지 않고 간편 운영
#.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넓은 평지. 지상에 가만히 머물러 있던 무인기 한 대가 사뿐히 떠오른다. 길쭉한 동체와 날개, 그리고 프로펠러를 갖춘 일반적인 고정익 형태의 무인기다.
그런데 이 무인기, 뭔가 심상찮다. 넓은 창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지점을 맴돌기만 한다. 마치 연 같다. 무인기가 바람을 타고 움직일 때마다 동체 아래에 연결된 줄은 풀리기도, 감기기도 한다. 이 무인기는 최근 개발된 하늘을 나는 풍력발전기다. 생긴 것은 영락없는 무인기이지만 화물을 운송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일으킨다. 현재도 풍력발전기는 흔하다. 대개 바람개비를 닮았고, 땅에 기둥처럼 박혀 있다. 그런데도 풍력발전기 역할을 하는 이런 ‘이상한’ 무인기를 또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산만한 움직임’ 실현해 전력 생산
‘KM2’라는 이름을 지닌 이 무인기는 최근 영국 브리스톨대와 노르웨이 기업인 카이트밀 소속 연구진이 협력해 개발했다. 연구진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KM2는 바람이 불 때 땅에서 수직으로 떠오른다. 활주로가 필요 없다. 이륙할 때에는 날개에 달린 프로펠러 4개를 잠시 돌려 양력, 즉 공중에 부양하는 힘을 극대화한다.
공중에 뜨면 프로펠러는 멈춘다. 그 뒤 KM2는 자연적으로 부는 바람을 타고 고도 150~350m를 유지하며 비행한다. 바람을 쉽게 받도록 하기 위해 KM2에는 매우 긴 날개가 장착됐다. 무려 16m다. 아파트 5개층 높이와 맞먹는다.
KM2는 여느 무인기처럼 먼 곳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동체 아래에 달린 폴리에틸렌 섬유 재질의 줄에 묶여 비슷한 자리를 맴돌기만 한다. 폴리에틸렌 섬유는 어망이나 밧줄로 활용될 만큼 질기다. KM2가 움직이는 모습은 ‘산만함’ 그 자체다. 전후좌우, 위아래 할 것 없이 공중을 마구 휘젓는다. 이런 부산스러운 움직임은 연구진이 설계를 통해 일부러 구현한 것이다.
KM2가 바람을 타고 상승하면 줄이 하늘을 향해 후루룩 풀리는데, 이때 줄과 연결된 지상 시설 안의 ‘얼레’가 강하게 회전한다. 얼레는 지상 시설 내부에 장착된 발전기 내에서 ‘터빈’ 역할을 한다. 어떤 발전기에서든 터빈이 돌아가야 전기가 생산된다. 수력 발전소에서는 댐에서 떨어지는 물의 낙차가 터빈을 돌리지만, KM2는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줄의 움직임이 같은 역할을 한다.
KM2가 일정 고도까지 올라가면 지상 시설에서는 얼레를 돌려 줄을 감는다. 다시 바람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KM2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KM2는 꾸준히 전기를 생산한다.
카이트밀은 회사 설명자료를 통해 “줄을 언제, 얼마나 풀고 감아야 할지는 지상 시설 내 자동 제어 시스템이 결정한다”며 “이를 통해 전력을 최적의 조건에서 생산한다”고 밝혔다. 바람이 너무 세게 또는 약하게 불어 KM2를 정상적으로 띄우기가 어려우면 제어 시스템은 줄을 완전히 감아 KM2를 착륙시킬 수도 있다.
지형 가리지 않고 운영 가능
KM2의 발전용량은 100킬로와트(㎾)다. 지상에 고정해 놓고 작동시키는 일반적인 바람개비형 풍력발전기의 발전용량이 약 2메가와트(㎿)인 것과 비교하면 적은 편이다. 20배 차이가 난다.
하지만 지난해 한 네덜란드 기업이 하늘을 나는 낙하산을 사용해 전력을 만들 수 있다며 내놓은 비슷한 유형의 기술은 발전용량이 30㎾에 그쳤다. 연구진은 향후 발전용량을 500㎾까지 키울 예정이다. 발전용량이 비교적 작아도 KM2에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바람이 부는 곳이면 아무 데서나 띄울 수 있다는 점이다. 고정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에 곤란한 지형이어도 전력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다.
KM2를 전력망에 통합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고정형 풍력발전기 없이도 손쉽고 빠르게 전기를 만들어 각 가정에 공급할 수 있다. 연구진은 “공기 중 바람의 힘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하늘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일은 여전히 새로운 기술인 만큼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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