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이름 비공개에 지역신문 일제히 비판 "실효성 의문"

장슬기 기자 2024. 6. 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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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공무원 성명 게시 여부 지자체 자체 판단 공문…전국 각지 지자체 공무원 이름 비공개
"누군가는 받아야, 하급공무원에 업무 몰릴 것", "민원인 중 고령자 많아 '온라인 괴롭힘' 드물어"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이상민 행안부 장관. 사진=ytn 갈무리

최근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부처들이 누리집에서 공무원 실명을 없애자 여러 지역 언론에서 이를 비판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무원들을 보호하는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언론에서는 실효성이 없거나 시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조치라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살펴봤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4월 '홈페이지 등지에 담당 공무원 성명 게시 여부는 지자체가 자체 판단하라'는 공문을 보냈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지난달 1일 악성 민원 방지와 민원 공무원 보호 강화 범정부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3월 경기도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중앙부처부터 광역·기초 지자체와 소속 읍면동 누리집까지 이른바 '익명화 바람'이 불고 있다.

뉴스사천 지난달 23일자 <사천시 대표 누리집에 공무원 이름 가린다…민원인 불편은?>을 보면 지난달 17일 기준 경남도청과 경남도내 11개 시군(창원시, 진주시, 김해시, 밀양시, 양산시, 함안군, 창녕군, 남해군, 산청군, 거창군)이 직원 성명 비공개로 전환했다.

세계일보 천안·아산 주재기자가 쓴 8일자 <“공무원 이름 공개, 행정 신뢰 높여” vs “악성민원에 극단선택까지”>를 보면 충남에서 천안시가 최초로 공직자 이름을 비공개로 전환했고 천안시는 앞서 1월부터 각 사무실 입구에 있는 직원안내 직제표에서 직원 사진도 삭제했다. 이후 아산시는 공무원들의 성만 공개하고 이름을 가렸다.

중앙일보 전주 주재기자의 지난달 31일자 <공무원 이름 비공개, 악성민원 줄었지만…“소통 역행” 반응도>를 보면 17개 시도 중 전북특별자치도를 비롯해 충남도·광주시·세종시 등 10개 광역단체에서 4급(서기관) 또는 5급(사무관) 이하 공무원 실명과 직책이 비공개로 전환됐다. 전북에서는 전주시·군산시·익산시·부안군 등이 비공개로 바꿨다.

옥천신문 지난 7일자 <공론화 없이 홈페이지 공무원 이름 비공개한 군, “책임행정·알권리만 역행”>을 보면 옥천군은 지난달 27일 누리집에서 공무원 이름을 비공개했고, 충북 내에선 충주시와 영동군 등이 비공개했다. 강원일보 지난달 17일 보도를 보면 강릉시는 강원 지역 18개 시군 중 처음으로 공무원 이름을 비공개했다.

경향신문 5일자 <이름 숨긴다고 악성 민원 줄어들까>를 보면 충남·경북·경남도는 조직도에서 도지사의 이름을 뺐고, 서울 25개 자치구 중 중구·금천구·영등포구는 구청장 이름까지 비공개했다.

▲ 공무원들 실명을 없앤서울 영등포구청 누리집 갈무리

지난 5일 아시아경제 기사 <홈페이지서 사라진 '공무원 이름'… “부처 투명성 저하 우려”>를 보면 중앙부처에선 국방부, 여성가족부, 외교부, 통일부 등이 공무원 이름을 가렸다.

이들 보도를 보면 악성 민원을 막겠다는 이번 조치가 탁상공론에 그칠 거란 의견이 많았다. 이는 단지 시민들이나 전문가뿐 아니라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나오는 비판이다.

중앙일보 위 보도를 보면 한 지자체 공무원(6급)은 “익명화가 얼마나 악성 민원을 줄이고 젊은 공무원 이직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민원인 전화가 오면 누군가는 받아야 하는데 외려 성명 비공개로 '전화 돌리기' 관행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하위직 공무원에게 업무가 몰릴 것”이라고 했다.

옥천신문은 옥천군이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비공개를 결정한 점을 문제 삼으면서 “고령자가 많은 우리 지역 특성상 자칫 민원 업무에 차질을 빚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악성 민원 근절을 위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하면서도 공직사회 내에서 악성 민원 피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한 공무원은 옥천신문에 “누리집에 이름을 가린다고 특별히 보호받는 느낌도 없고 민원인 중 고령자가 많기 때문에 '온라인 괴롭힘' 같은 사례가 있을 거라 보이지는 않고 어르신들이 군청에 찾아왔을 때 업무에 어려움도 생길 것”이라며 “악성 민원에 대응하기 위한 군 차원의 구체적이고 공무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조치가 더 중요하고 일선 공무원에게 악성 민원을 대응하도록 할 게 아니라 부서 책임자가 앞장서서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 5월9일 경기일보 사설

사설에서 직접 비공개 방침을 비판한 곳도 있다. 경기일보는 지난달 9일 사설 <공무원 이름 비공개, 악성민원 막을 근본대책 못 된다>에서 “자칫 공무원의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 있고 행정의 투명성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그러잖아도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민원 상담을 하려면 담당 부서가 아니라며 전화 '뺑뺑이'를 돌리는 사례가 종종 있다. 업무 담당자를 비공개로 하면 익명 뒤에 숨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지역신문에서 비판이 커지자 전국단위 일간지 사설에도 등장했다. 한국일보도 지난 8일 사설 <구청장 이름까지 비공개…악성민원 대책 쏠림 우려된다>에서 “주요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참여한 관련자의 직급과 성명 등을 기록하도록 한 정책실명제와도 충돌한다”며 “민원인 폭언 시 공무원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한 조치 또한 악용을 막으려면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한 뒤 “교사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학생인권조례를 없애는 것이 논란이 되듯, 공무원 보호를 위해 정상 민원의 장벽까지 대폭 높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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