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전기, 할매들 눈물”…밀양행정대집행 10년

최상원 기자 2024. 6. 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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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상동면 고정마을에 사는 김장옥 할매는 “작대기로 송전탑을 뿌사삐모 좋것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언놈이 씨부리도(어느 누가 떠들어도) 탈핵 탈송전탑이 미래다.”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한데, 고정마을 김장옥(80) 할매는 지팡이 없인 동네 마실도 어렵다. 여장군 같았던 평밭마을 한옥순(77) 할매는 무릎 수술을 받아 제대로 걷지 못한다. 그사이 많은 할매들은 “송전탑 뽑는 것을 내 눈으로 꼭 봐야 하는데”라는 여한을 남기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산속 농성장에 올라 송전탑 건설을 막았던 ‘밀양 할매’들의 싸움이 벌써 10년 전이다. 하지만 세월도 ‘밀양 할매’들의 결기는 부러뜨리지 못한 듯했다. “송전탑을 뽑을 때까지 우리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몸을 비틀어 가며 외치는 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투사였다.

11일은 밀양 765㎸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장을 행정대집행을 내세워 강제철거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8일 10년 전 밀양 주민들과 함께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싸웠던 전국의 활동가들이 ‘희망버스’ 22대를 타고 다시 밀양으로 모여들었다.

전국 15개 지역 223개 단체 활동가 1500여명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8일 오후 4시 경남 밀양시 밀양강 둔치공원에서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를 열었다. 활동가들은 결의대회에 앞서 밀양시 여수·고정·평밭·용회마을과 경북 청도군 삼평리 등 5개 마을에 들러서 주민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765㎸ 송전탑을 둘러봤다.

지팡이를 짚고 희망버스를 마중 나온 상동면 고정마을 김장옥 할매는 “언자 산에도 못 올라가겠고, 작대기로 송전탑을 뿌사삐모 좋것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여년 전 밀양은 국책사업인 ‘76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 때문에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 사업은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보내기 위해 울산 울주군, 부산 기장군, 경남 양산·밀양시와 창녕군 등 5개 시·군 90.5㎞ 구간에 밀양 69개 등 송전탑 161개를 세우고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한전은 2008년 이 사업을 착공하려 했는데, 밀양 주민들은 2005년 5월 초고압 송전선로가 마을과 논·밭·축사 인근을 통과할 것을 알게 됐고 이때부터 송전탑 건설 반대투쟁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똘똘 뭉친 밀양 공동체를 갈라놓은 건 돈이었다. 한전은 2013년 8월1일 특수사업보상내규를 바꿔 각 마을에 지급하려던 마을공동사업비의 40%를 피해 주민들에게 개별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국책사업에 개별 보상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개별지원금은 이웃사촌끼리 등을 돌리고 싸우게 만드는 등 마을공동체를 파괴했다. 개별지원금은 가구당 384만원이었는데, 여기에 마을공동사업비를 합하면 가구당 1천만원 정도 됐다. 하지만 고정마을 13가구 등 18개 마을 143가구는 여전히 보상금 받기를 거부하며 싸우고 있다. 이날 김장옥 할매는 또 “돈이 뭐라꼬. 천만원 그 돈 받고 부자 됐겄나? 돈 안 받은 내가 훨씬 맘 편하다”며 한전의 보상금을 받고 송전탑 건설에 동의한 이웃에 대한 섭섭함도 드러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에너지 정책의 정의로운 전환’과 함께 “밀양 송전탑 투쟁의 폭력진압 책임자 김수환 경찰청 차장은 주민과 국민 앞에 즉각 사죄하라”는 요구를 내걸기도 했다. 한전이 2014년 6월11일 경찰의 힘을 빌려서 농성장을 강제철거하고, 같은 해 말 사업을 완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밀양 주민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383명이 입건됐다. 이 일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책임자인 당시 밀양경찰서장이 밀양 출신인 김수환 현 경찰청 차장이다.

이날 경북 월성, 강원 홍천, 전남 영광, 경남 하동 등 밀양처럼 발전소와 초고압 송전선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주민들도 결의대회에 참가해 “10년 전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했던 밀양 주민들의 말을 이제는 우리도 이해하게 됐다”며 함께 힘 모아 싸울 것을 다짐했다. 박은숙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주민대표는 “최근 정부는 핵발전소 4개를 더 짓겠다고 발표했다. 밀양과 같은 끔찍한 일이 반복될 것이 뻔하다”며 “제2의 밀양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가 지난 8일 경남 밀양시 밀양강 둔치공원에서 열렸다. 최상원 기자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가 지난 8일 경남 밀양시 밀양강 둔치공원에서 열렸다. 최상원 기자
765㎸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싸웠던 ‘밀양 할매’들. 최상원 기자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이 밀양시 상동면 고정마을 뒷산에 세워진 115번 송전탑을 살펴보고 있다. 최상원 기자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에 참가한 활동가들이 춤과 노래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최상원 기자
경북 월성, 강원 홍천, 전남 영광 등 예전 밀양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지역 주민들도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에 참가해 함께 힘 모아 싸울 것을 다짐했다. 최상원 기자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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