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휴진 예고에··· 정부 “대화로 풀자”, 환자단체 “극단적 이기주의 행태”
정부가 전공의 행정명령 철회라는 유화책을 내놨지만 내년도 의대 증원을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 대치는 점점 더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의 18일 집단휴진 예고에 정부는 전공의 복귀 시 어떠한 불이익도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의료계 휴진 자제를 당부했다.
9일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오는 18일 집단 휴진 계획을 발표했다. 당초 의협은 이틀 뒤인 20일을 집단 휴진 시점으로 계획했었으나, 파급력을 키우기 위해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 비대위)의 집단 휴진 시점인 17일에 이어 단체행동에 들어가는 것으로 날짜를 앞당겼다고 밝혔다. 의협이 예고된 날짜에 단체행동을 할 경우 역대 4번째 ‘의사 파업’이 된다. 의료계는 의약분업(2000년), 원격의료 추진(2014년), 의대 증원(2020년) 등의 정부안에 반대하며 단체행동을 벌인 바 있다.
의협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단체행동 목표가 내년도 증원 절차 중단 요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휴진의 목적은 휴진에 있지 않고 정부 정책을 멈추게 하는 데 있다”며 “과반이 넘는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들 중 90%가 넘는 압도적인 비율의 회원이 강경한 투쟁을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참여율이 얼마나 높을지는 미지수다. 의협은 개원의들이 중심이 된 단체로, 전공의들에 비해서는 단합력이 약하다. 2020년 8월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며 실시됐던 의사 총파업 당시도 1차 파업 첫 날(8월14일)에만 참여율이 약 33%로 비교적 높았다. 2차 파업(8월26일) 첫날 휴진율은 10.8%(3549곳), 그 다음날 휴진율은 8.9%(2926곳)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전공의 행정명령 철회라는 ‘유화책’을 내놨음에도, 정부에 적대적인 의료계의 분위기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재승 전 서울의대 비대위원장은 9일 의협 회의에 참석해 “정부의 방침은 비복귀나 사직 전공의에게 붙은 꼬리표를 떼지 않고, 다시 (정부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3개월 면허정지를 하겠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비대위에서 했던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환자를 실제로 보는 교수님들의 답변으로만 추리면 대부분이 (17일) 집단휴진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의대 비대위는 집단 휴진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전체 휴진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외에 저희에게 남아있는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집단 휴진이 가시화되면 정부는 법에 따라 강경하게 대응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실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집단행동은 바람직스럽지도 않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라며 “개원의들의 불법적 집단행동이 있으면 정부는 의료법 등에 따라 여러 필요한 조치를 해서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휴업·폐업한 지역 내 진료기관의 비율이 15% 이하일 경우 정부와 지자체는 의료기관에 진료유지·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을 때 정당한 사유 없이 개원의들이 이를 거부할 경우 1년 이하의 자격 정지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형도 받을 수 있다.
이밖에 응급의료법,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면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다. 김재정 전 의협 회장은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당시 의료법 위반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의사면허가 취소됐다가 2009년 재발급 받았다.
하지만 집단휴진을 예고한 시점까지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정부는 의료계에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도 전공의 복귀 메시지를 더 강조했다.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현장으로 돌아온 전공의분들에게 어떤 불안도 없도록 하겠다. 복귀하는 분들에게는 행정처분을 포함해 어떤 불이익도 없을 거라고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또 “교수님들이 휴진을 하시거나 환자 곁을 떠나시는 그러한 일에 대해서 저희는 아직 예상하고 있지 않다”며 “저희가 남은 기간 동안에 최대한 교수님·전공의들과 시간, 장소, 주제를 막론하고 대화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집단 휴진 시) 비상진료대책은 보완 시나리오가 있는데,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보완 대책을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환자단체는 의료계의 단체행동 확산 분위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6개 환자단체가 모인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9일 성명을 통해 “국민건강은 내팽개치고 집단이익만 추구하는 극단적 이기주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연합회는 “우리 환자들과 국민은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들의 패륜적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정부는 의사 불법파업을 단순한 보건문제가 아니라 국민안전과 생명을 위해하는 국가비상사태로 다스려 국가공동체, 국민공동체를 온전히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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