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대통령 되면 재판 중단? 헌법 84조 논쟁
형사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이 중단되는지가 정치권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이재명(현 민주당 대표) 경기지사 방북 대가로 쌍방울에 대북 송금을 대납시킨 혐의에 대해 1심 법원이 사실로 인정해 유죄를 선고하면서다. 대통령은 재직 중에는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검찰은 대북 송금 의혹의 정점에 있는 이 대표도 조만간 제삼자 뇌물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당선되더라도 취임 전부터 시작된 형사 재판이 계속 진행되는지, 만약 재판이 계속돼 유죄가 선고될 경우 대통령직 유지에 영향을 미치는지가 쟁점이 된 것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논쟁에 불을 댕겼다. 한 전 위원장은 8일 소셜미디어에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 그 재판이 중단되는 걸까”라며 “헌법 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에서 ‘소추’에 재판이 포함되느냐의 해석 문제”라고 했다. 한 전 위원장은 이 대표를 겨냥해 “지금까지는 현실 세계와 거리가 먼 학술적 논의일 뿐이었지만 거대 야당에서 어떻게든 재판을 지연시켜 피고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 하는 초현실적 상황에서는 국가적 이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한 차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 상고심 판결을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 후보는 이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상태였다.
당시 법학자들 의견은 갈렸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당시 “소추는 기소(起訴)의 의미로 좁게 봐야 한다. (대통령 취임 전에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정지하거나 중단할 명분은 없다”고 했다. 민주당 윤리심판원 간사를 지낸 임 교수는 “헌법 84조는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특권 조항인데 엄격하게 해석해야지 넓게 확대 해석하면 권한 남용을 정당화시킨다”고도 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도 “취임 전 재판이 시작됐다면 불소추 특권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당시 민주당 송영길 의원도 “홍 후보는 재직 중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정치인 시절에 있었던 행위”라며 같은 논리를 폈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이 조항(헌법 84조)의 취지는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사법권의 방해를 받지 않을 권리로 봐야 한다”며 “임기가 시작되면 재판이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추엔 기소는 물론 공소 유지 등 재판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고 홍 후보도 나중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돼 이 논란은 더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대표가 유력 차기 대선 주자인 데다 현재 여러 건의 형사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어 찬반 논쟁이 더 뜨거운 분위기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소추라는 개념은 수사부터 기소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그 전에 받던 재판 진행과는 상관없다”고 했다. 한동훈 전 위원장도 9일 “헌법은 탄핵소추와 탄핵심판을 따로 규정하고, 대법원도 형사소추와 형사소송을 용어상 구분하므로 헌법 84조의 소추란 소송 제기(기소)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미 진행 중인 형사재판은 형사피고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중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현직 대통령에게 새로운 형사사건에 대한 소송 제기는 할 수 없어도, 이미 소송이 제기돼 진행 중인 형사재판은 중단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홍완식 건국대 교수는 “대통령 재직 중 형사처벌로 인한 국가 혼란을 막기 위한 (입법) 목적에 비춰 재직 전 범죄건 재직 중 범죄건 소추를 할 수 없다는 게 목적상 (타당한) 해석”이라고 했다. 검사 출신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면 그 선택을 존중해 재판도 중단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만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재판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을 전제로 대통령이 재임 중 집행유예 이상의 유죄가 확정된다면 대통령직을 상실한다는 점에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었다. 어떤 경위가 됐든 공무담임권을 상실하는 형이 선고되면 그 직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법률적 논란과 별개로 이미 취임한 현직 대통령에 대해 법원이 형사재판을 계속 진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 불소추 특권에 대해 해석상 찬반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취임 전 시작된 재판 때문에 법정에 세우거나 유무죄를 가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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