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대왕고래` 브리핑의 아쉬움
깜짝 뉴스였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탐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추정된 매장량도 엄청났다. 우리 국민이 석유 4년, 천연가스 29년을 쓸 수 있는 최대 140억배럴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도 중동 국가처럼 산유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 브리핑이었다.
정부는 영일만에서 38∼100㎞ 떨어진 바다의 석유·가스 매장 추정지역을 '대왕고래'로 명명했다. 대통령의 발표대로 대왕고래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면 엄청난 국가 경사이다. 대통령으로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할 일이었겠지만 발표 과정에 대한 아쉬움은 매우 크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면서 탐사과정 및 결과에 대통령이 가져야 할 부담이 너무 커졌다. 탐사 및 시추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면, 산업자원부 장관이 발표하고 추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탐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에서는 대통령의 발표를 말리지 못했다.
정부의 교차 검증도 아쉬웠다. 석유 매장의 높은 가능성을 주장한 액트지오(act-geo)라는 회사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필요했다. 윤 대통령은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고 말했지만 액트지오는 그리 번듯한 외형을 가진 회사가 아니다. 직원 숫자도 10명이 안된다. 호주의 석유개발업체 우드사이드는 수년간 영일만 탐사를 한 뒤 개발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서 철수했다. 그런데 액트지오는 같은 지역의 석유개발 가능성을 15~20%로 재해석했다. 설사 액트지오가 월등한 능력이 있더라도 다른 기관을 통해 교차 검증을 했어야 했다.
액트지오의 설립자이며 고문인 비토르 아브레우(Vitor Abreu) 박사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석유개발 가능성이 높기에 당연히 시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브레우 박사는 미국 퇴적학회장과 엑슨모빌 지질그룹장 등을 역임한 세계 심해지역 탐사에 대한 권위자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액트지오 홈페이지에 책임자(Director)로 소개된 르네 용크(Rene Jonk) 박사는 불과 5일 전에 책임자가 되었다고 소셜미디어에 적었다. 우리 정부의 발표 즈음 국장이 된 셈이다. 석연히 않다.
윤 대통령의 브리핑 이전에 하필 천공의 발언이 있었다. 역술인 천공은 2주 전 유튜브 영상에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산유국이 된다"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이 나라 밑에 가스고 석유고 많다"며 "예전에는 손댈 수 있는 기술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있다"고 주장했다.
정말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대통령 주변인이 천공에게 미리 이야기를 건넸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만약 천공이 유튜브에서 언급한 수준을 넘어 정보를 공유, 관련 주식투자를 했더라면 이는 엄청난 게이트가 된다. 국가기밀의 누수 현상이 있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산유국의 꿈이 현실화되려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탐사에 사용되는 시추선 대여료만해도 40일에 3200만달러(약 439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미 노르웨이 시드릴(Seadrill) 시추선을 예약했다고 한다. 또 심해 시추공 하나를 뚫는 데에만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한두개 시추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추공 5개면 5000억원, 10개면 1조원이다. 더구나 돈을 많이 들인다고 반드시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다. 1조원 이상이 들어가기에 비용의 적절성과 투명성,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0.6%, 부정평가는 65.9%였다(리얼미터 집계).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에 부정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어떠한 발표도 좋게 말하지 않는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대통령의 발표에 숨겨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의 발표 직후 '주가조작 의혹', '국면전환용 쇼'라는 용어를 동원하며 의혹부터 제기하였다. 실패 확률 80%라고 부정성을 부각시키는 상황이다.
현대인은 하루 24시간 석유의 지배를 받는다. 자동차 운행은 물론 실내외 조명과 냉난방, 농업생산, 심지어 플라스틱도 석유 추출과정의 부산물이다. 그동안 소수 국가의 몫이었던 산유국에 한국이 포함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짜릿하다.
하지만 국민의 지지 없이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하고 좌초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서민들의 삶을 보듬는 민생경제를 통해 국민 마음을 얻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진심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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