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남 확성기' 맞불 가능성… 軍 "추가 도발 땐 강력 응징"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박수찬 2024. 6. 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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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강 치닫는 南北
1963년 시작… 정세따라 재개·중단
2018년 판문점 선언 직후 ‘창고行’
北 내부 흔들 치명적인 심리전 수단
軍 ‘자유의소리’ 라디오 재송출 재개
확성기 심리전 땐 접경지 주민 불안
南北 군인, 피로감에 충돌 우려도

정부가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 재개에 맞서 9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했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 직후 중단했던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던 심리전 수단이다. 확성기 방송 재개를 계기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풍선에 확성기까지… 양측 모두 강대강 대치

북한의 세 번째 오물풍선 살포와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결정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북한은 지난 2일 국방성 부상 담화를 통해 오물풍선 살포 잠정 중단 방침을 밝히면서 대북 전단살포가 재개되면 다시 뿌리겠다고 위협했다. 정부도 지난 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9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소집해 북한의 오물풍선 대응 방안을 논의한 뒤 대북 확성기 설치와 방송 재개를 결정했다. 사진은 2004년 6월 서부전선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군 장병들이 철거하는 모습. 연합뉴스
양측이 대응책을 공개해 놓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남북 모두 대내외 메시지와 정책의 일관성·신뢰성에 상처를 입게 된다. 8, 9일 북한이 세 번째로 띄운 대남 오물풍선 330여개 중 남한 지역에 낙하한 것은 80여개 정도였고, 상당수는 바다 또는 북한 지역에 떨어질 정도로 효율이 높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카드를 북한이 더 강도 높은 도발을 감행했을 때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정부가 방송 재개를 결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심리전이지만 일종의 치킨 게임을 보는 것 같다”며 “남북한이 심리전에 대해 강대강으로 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결정에 따라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날 재개된 확성기 방송은 국군심리전단이 운영하는 ‘자유의소리’ 라디오를 재송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대북 확성기는 최전방 10여곳에 고정식으로 설치되어 있고 이동식 장비도 40여대가 있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따라 고정식 확성기는 철거돼 창고에 보관 중이고, 이동식 장비는 인근 부대에 있다. 군이 이날 이동식 장비를 활용해 방송을 재개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군은 정부가 9·19 합의 효력을 중지시켰던 지난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자유의 메아리 훈련’을 실시하는 등 관련 준비를 진행해왔다. 훈련에는 고정형 확성기를 실은 차량이 전방으로 이동하고 장병들이 확성기를 설치하는 등의 과정도 포함됐다.

1963년 5월1일 서해 쪽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남북 군사합의로 중단됐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당시 천안함 피격(2010년)과 북한군 지뢰 도발(2015년),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등에 대한 조치로 일시 재개됐다.

◆북한의 향후 도발 시나리오는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결정에 대해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며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확성기 방송에 맞서 대남 확성기 방송 카드를 꺼낼 수 있다. 남측의 행동에 비례적으로 맞대응하면서도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이 있는데 그것부터 할 가능성이 있다”며 군사적 위협을 가해올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위성항법체계(GPS)에 대한 전파 교란을 강화하거나 오물풍선을 추가로 살포할 가능성 등도 거론된다.
6일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한 기정동 마을과 남한 대성동 마을이 보이는 가운데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뉴스1
정부의 확성기 방송 재개 결정에 접경지 주민들은 평온 속 긴장감을 토로했다. 국내 유일 비무장지대(DMZ) 마을인 경기 파주시 대성동 마을 김동구 이장은 “특별히 달라진 것 없이 평소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면서도 “확성기 방송 재개에 북한이 대남방송을 재개하면 주간은 물론 야간에도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김남명 이장도 “주민들이 민간인통제구역 내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 대북 확성기 재개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하면 생업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현재 대부분은 차분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외교안보특위 한기호 위원장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군은 당장 대북방송 시설을 완비해 북한 도발이 계속된다면 즉각 대응해서 방송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회견 후 기자들에게 “북한 심리전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북한이 싫어하는 심리전 수단인 대북방송을 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해식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대북 전단살포를 오물풍선으로 대응한 북한에 확성기 설치·방송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강대강 대치 국면이 단기간 내 해소될 기미가 없는 상황에선 일선 부대 장병들의 긴장과 피로가 누적되어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있다. 양 교수는 “우리 군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 북한도 고출력 확성기를 틀 것이다. 그러면 북한과 우리 군인들의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누적되어 안전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이는 우발적 충돌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정지혜·김병관 기자, 파주·고성=오상도·배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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