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 하나 들고 전하는 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김한솔 기자 2024. 6. 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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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곡 채운 정규 앨범 ‘Thinks’ 발표한 뮤지션 이두헌
10년만에 두번째 앨범을 낸 뮤지션 이두헌은 예전보다 10배 쯤 더 노래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뮤지션 이두헌(60)의 곡 ‘전자오락실에서’의 첫 45초는 전주로만 진행된다. 시작과 동시에 귀를 사로잡기 위해 애쓰는 요즘 음악들에 마치 보라는 듯, 길고 느린 연주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진다. 46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두헌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는 전주에도 나름의 이야기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다른 곡 ‘그대와 함께 걷다 보니’의 길이는 무려 5분 19초다. 보통 2분 30초 안팎에서 끝나는 요즘 노래들 두 개를 합친 것만큼 길다. 음악에서 중요한 게 길이 만은 아니지만, 그는 조금 긴 음악이어야 담을 수 있는 마음도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들을 꾹꾹 눌러 담아 만든 앨범 <싱크스(Thinks)>가 지난 5일 발매됐다. 첫 솔로 앨범 <싱스(Sings)>를 낸 지 10년 만에 두 번째 앨범을 낸 그를 지난 3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뮤지션 이두헌. 서성일 선임기자

이두헌은 어떤 세대에겐 낯설고, 어떤 세대에겐 몇 가지 히트곡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1980년대 활동한 포크밴드 다섯손가락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다.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풍선’ ‘이층에서 본 거리’ 등의 히트곡을 만들었다. 이 중 ‘풍선’은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가 2006년 리메이크해 2030세대에도 익숙한 노래다.

많은 이들이 과거의 히트곡으로 그를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그 이후에도 계속 자기 색을 담은 신곡을 내며 활동해 왔다. 이제는 밴드가 아니라 혼자 통기타 하나만 들고 작은 콘서트장에서 단독 공연을 한다. 그는 웃으며 “과거에 이룬 성취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옛날 것으로 나를 평가받는 게 이제는 조금 지쳤어요. 새로 만든 곡들도 많은데 왜 나는 지금도 ‘수요일에 빨간 장미를’ ‘풍선’ ‘새벽기차’ ‘이층에서 본 거리’를 부르는 사람이어야만 하는가. 물론 이 곡들 없이 제가 있을 순 없겠지만, 꼬리표를 좀 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통기타 하나만 갖고 콘서트도 하는 거예요.”

신보 <싱크스>에 담긴 12곡 중에는 신곡도 있고, ‘전자오락실에서’ 처럼 과거의 곡을 재녹음 한것도 있다. 더블 타이틀곡인 ‘부탁’은 1983년 곡 ‘새벽기차’를 연주곡으로 재녹음하려다 멜로디를 붙였다. 이 곡은 ‘그대와 함께 걷다 보니’ 라는 곡의 답가이기도 하다. 세상을 떠난 지인이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하는 꿈을 꾸고 나서 만든 곡이다. 앨범의 타이틀곡 ‘나는 나이기에 아름다운 것’의 가사에는 그가 시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세상 그 어디에도 날 닮은 나는 없어.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어.’ “비교의 시대잖아요. 나라는 사람이 나로서, 너라는 사람은 너로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으면 세상이 조금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는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음악을 했다. 트렌드에 따라 ‘이렇게 쓰면 히트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며 음악을 만들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제가 듣고 싶고 제가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노래”를 하는 것을 가장 중심에 두고 작업한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던 때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음악을 내면 다들 들어줄 거라 생각했던 오만한 시기를 지나서, ‘내 이야기인데 한 번 들어봐 주실래요’ 하는 자세가 됐어요.”

뮤지션 이두헌. 서성일 선임기자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예전보다 노래 연습도 더 열심히 한다. “예전보다 열 배쯤 노래 연습을 더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연습 안 했어요. 술 먹고 놀다가도 무대 올라가면 그냥 되는 건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그의 보컬 코치는 그가 음악을 가르쳤던 후배다. “누가 저한테 ‘자존심이 없는 것 같다’고도 하던데 전 이게 괜찮은 것 같아요.”

K팝 아이돌 음악과 트로트가 대세인 요즘 포크 음악은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다양성의 문제가 있다”면서도 “그건 우리 연배의 뮤지션들 중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 무대가 없다고만 이야기하고 혼자 통기타 지고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아요. 우리 세대 음악이 잘 안되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옛날 스타일로만 하려고 해요. 우리가 힙합을 하거나 아이돌 음악 스타일의 리듬을 쓰자는 건 아니지만, 자기 생각이 담긴 노래로 계속 승부를 보면 언젠가는 잘 될 거라고 봐요.”

그는 경기도 용인에서 북카페 ‘책가옥’을 운영 중이다. 작은 공연도 할 수 있는 작업실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은 어쿠스틱 전용 공연장으로 만들까 고민 중이다. 그는 “소박하지만 깊은 음악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세력이 됐으면 좋겠다”며 “별다른 치장없이, 그냥 툭 나와서 실력으로만 자기 생각을 담은 노래를 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그의 꿈은 어디서 음악을 하든, 50명 정도가 음악을 들으러 와주는 것이다. 그런 관객만 있다면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오는 15~16일 이틀간 서울 CKL스테이지에서 ‘싱스’(Sings)라는 이름으로 공연한다.

“노력하면 지금보다 제가 조금 더 나아질 거로 생각해요. 체중도 11kg 뺐어요. 그러니까 호흡 문제가 해결됐어요. 나이가 들어서 호흡이 잘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60에 음반을 냈는데, 한 3년 있으면 더 나아져 있지 않을까요, 지금같이만 한다면.”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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