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화홍병원의 ‘무책임한’ 인공신장실 폐쇄

오민주 기자 2024. 6. 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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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주 경기일보 사회부기자

“이틀에 한 번 혈액 투석을 받으러 갔던 병원에서 갑자기 운영 중단을 통보했습니다. 청천벽력입니다.”

지난달 말 수원의 한 종합병원이 일주일 후에 ‘인공신장실’ 운영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날 취재진이 찾아간 화홍병원 인공신장실은 대혼란에 빠져있었다. 투석을 받고 있던 환자뿐 아니라 간호사들도 인공신장실 운영을 중단하게 된 이유를 몰랐다. 일부 투석실 간호사는 병원 측의 일방적인 통보에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환자들과 함께 분노했다.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병원 측에 항의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회사에 다니며 투석을 받아 온 환자는 급하게 야간 투석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병원 측에 투석이 가능한 병원을 연계해달라고 하자, 그가 받은 것은 병원 14곳이 적힌 종이 한 장이 전부였다.

우리나라 투석 환자의 약 96%는 주 3회 병원을 찾아 ‘혈액 투석’을 받고 있다. 투석을 제때 받지 못하면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인공신장실을 갑자기 폐쇄할 수 있는지 환자와 가족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인공신장실 관련 기준이 전혀 없다는 것. 지난 2011년 정부가 대한신장학회에 ‘인공신장실 설치 기준 마련을 위한 조사연구’를 의뢰한 후, 이를 바탕으로 2021년 ‘인공신장실 설치 및 운영 세부 기준 권고안’을 구성했지만 시행은 아직도 안 됐다. 의료단체들과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인공신장실 설치 및 운영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제자리다.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만성콩팥병 환자 수는 460만명으로 늘었다. 성인 9명당 1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 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도 인공신장실을 마음대로 설치하고, 제멋대로 폐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언젠가 내 가족도 피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취재가 시작되자 화홍병원은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병원을 구하지 못하면 인공신장실 운영 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화홍병원은 무책임하게 지난 1일부터 인공신장실을 폐쇄했다. 결국 가까운 병원을 구하지 못한 한 환자는 1시간 반이나 걸리는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책임(責任). 어떤 일과 관련된 결과에 대해 지는 의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책임은 무엇일까.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 번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답이 있다. 화홍병원은 인공신장실 운영 중단을 통보하기 전에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기 위한 방안을 먼저 마련했어야 했다.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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