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랑이 고플 때는 문학 여행을 [서울 말고]

한겨레 2024. 6. 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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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두어 번, 함께 책을 읽고 여행하길 즐기는 책 친구들과 장흥으로 문학여행을 다녀왔다.

청년 시절 인생 책이던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작가의 삶과 문학 혼이 어린 곳이고, 종교와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이승우 작가의 고향이며, 문학 교과서로 읽었던 한승원 작가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그러나 본디 문학과 예술과 혁명은 가난하고 쓸쓸한 것이니 길 나서기 좋은 시절, 머나먼 남도에서 오래 잊었던 시와 사랑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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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작가(뒷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기거하는 \'해산토굴\' 마당 호두나무 정자 아래서 시인의 \'고요, 신화의 속삭같은\' 시집을 함께 읽었다. 필자 제공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일 년에 두어 번, 함께 책을 읽고 여행하길 즐기는 책 친구들과 장흥으로 문학여행을 다녀왔다. 전라남도 장흥. 아름다운 곳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한반도 맨 끝자락에 있는 데다 교통이 불편해 좀처럼 먼 길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곳이다. 그러나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번쯤 가봐야 할 문학 여행의 성지임을 이번 여행길에 알았다.

청년 시절 인생 책이던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작가의 삶과 문학 혼이 어린 곳이고, 종교와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이승우 작가의 고향이며, 문학 교과서로 읽었던 한승원 작가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 게다가 동학 혁명을 그린 대하소설 ‘녹두장군’의 송기숙 작가까지 이곳 출신이니 문학적 자산이 몹시 풍부한 곳이다.

사흘에 걸쳐 작가들의 생가와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 장흥 구석구석을 돌았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영화 ‘천년학’ 촬영지, 장흥 출신 작가들의 기록을 모아놓은 천관문학관, 해안을 따라 조성된 문학공원 등 문학적 자산도 풍부하지만 그 흔적들을 기록하고 정비하여 관광 콘텐츠로 만들고자 하는 지자체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청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소설 ‘눈길’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길의 시작점과 마지막 지점을 복원해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미처 소설을 읽어오지 못한 우리는 길의 의미를 알기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오디오 북으로 소설을 들었다.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을 빌고 왔제”

이른 새벽, 집 떠나 도시로 가는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눈 내린 산길을 엎어지며 미끄러지며 함께 걷던 어미가 다시 길을 되짚어 두 사람 발자국이 선명한 눈길을 홀로 걷는 장면을 들으며 동승한 친구는 많이 울었다. 가난한 부모를 벗어나 자식이 복 받기만을 빌던 어미는 늙어 평생 쭈그려 일하던 밭에 묻혔고 작가는 그 앞에 자기 묘를 썼다. ‘이청준 문학자리’라 이름 붙인 묘역에서 우리는 작가가 남긴 글을 읽으며 ‘먼 돛배의 꿈이 되어 섬들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이 되어버린 그를 추억했다.

이청준 문학자리. 어머니를 이곳에 모시고 작가도 그 곁에 누웠다. ‘해변 아리랑’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있고 바닥에는 장흥 문학지도가 그려져있다. 필자 제공

문학여행의 마지막은 고향 마을에 ‘해산토굴’이라는 오두막을 짓고 평생 글을 쓰며 살아온 한승원 작가와 만남이었다. 85살 노 작가는 갓 출간한 신작 시집 열 두 권에 일일이 사인을 하고 우리를 기다렸다. 호두나무 아래 정자에 둘러앉아 ‘아버지의 시간은 지금 시속 팔십 오킬로미터로 달려가고 있어요.’ 딸이 웃으며 던진 말로 시작하는 늙은 시인의 삶과 문학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은 얼마나 평화롭고 다정했는지. 딸인 한강 작가가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온 동네 잔치를 열고 크게 한턱 냈다며 웃는 아비의 모습에서 우리는 따스한 남도의 품과 그리운 부모의 얼굴을 함께 만났다.

서울 경기와 충북, 각지에 흩어져 살던 책친구들이 수 백 킬로미터를 운전하고 달려와 기진맥진한 채 들어선 남도의 끝자락. 편백나무 숲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현실을 잊었고 1970년대 목선 가득했던 항구와, 무너져 내리는 폐가에서 아들에게 따순 밥을 해먹이고 싶었던 가난한 어미의 눈물과, 지금은 수몰되어 없어져 버린 작가의 생가와, 피바람 몰아쳤던 동학혁명의 좌절된 꿈속으로 시간을 거슬렀다.

자꾸만 잊혀 가는 지역의 역사와 문학을 보전하고자 하는 지자체와 주민들의 노력이 도시민들의 눈엔 때로 퇴락하고 남루하게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디 문학과 예술과 혁명은 가난하고 쓸쓸한 것이니 길 나서기 좋은 시절, 머나먼 남도에서 오래 잊었던 시와 사랑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문학자리 무성한 풀밭을 스치는 바람의 노래가 우리들 고픈 마음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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