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방향은 옳았다”, 당신들에게만 [세상읽기]

한겨레 2024. 6. 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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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그는 천하에 둘도 없는 철저한 시장주의자 같다. 더욱이 감세를 민생과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세금을 ‘소유권에 대한 강제적 침해’로 간주하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생각도 든다. 반면, 윤 대통령은 논란이 생기면 지체 없이 공권력을 동원한다. 총선 국면에서 벌어진 대파 논란이 그랬고, 라면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해 민간 기업에 압력을 행사한 것도 그렇다. 이뿐만 아니다. 케이티(KT)와 포스코의 경영진 선임에 개입한 것도 그랬다. 이는 영락없는 반시장주의자의 행보다.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로 인해 윤석열 정부는 국정 기조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말 그럴까? 지난 총선에서 대패한 후 개최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국정 방향은 옳았다”고 말했다. 비판이 쏟아졌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것이 대다수의 평가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국정 방향’을 언급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정부”의 국정 방향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내 생각도 같다. 윤석열 정부는 분명한 국정 방향이 있다. 외교·안보 정책은 이미 그 방향과 성격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경제·사회 정책이다. 사실, 한국의 경제 정책은 지난 30년 동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큰 ‘방향’에서 보면 변화가 거의 없었다. 아주 단순화하면 경제 정책의 방향은 집권 세력의 성격과 관계없이 세가지를 근간으로 했다. 첫째, 국가가 전폭적으로 재벌 대기업을 지원하고, 둘째, 대기업은 노동비용을 줄이는 자동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이며,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을 외국에 수출해 재벌 대기업을 성장시켜 경제성장을 이루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경제 정책은 방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난 정부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이 맞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기업 성장사다리 구축 방안’은 대·중소기업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대안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큰 변화는 복지 정책에서 일어나고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인은 실업과 빈곤이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야기하며 공적 복지를 확대했다. 이러한 흐름은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보편적 무상급식 논란으로 분출되면서 한국 복지 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국민적 논의로 이어졌다.

보편주의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서 누구도 거스르기 어려운 흐름이 되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보편적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을 공약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바뀌고 있다. 현 정부는 보편적 복지라는 암묵적 합의를 깨고, ‘약자복지’라고 명명한 취약층만 선별하는 잔여주의 방식으로 복지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집단 내에서 복지 확대의 방향이 보수의 성장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보편복지는 보편적이고 누진적 증세에 기반해 공적 복지를 모든 국민에게 대규모로 제공하는 복지 체계이다. 반면,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지향적인 고품질 제조업 중심의 성장 방식은 세금과 사회지출로 대표되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 체계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적 복지를 잔여적으로 재편하려는 이유이자, 윤 대통령이 “국정 방향은 옳았다”고 이야기한 이유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 방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복지 정책의 전환을 통해 사회·경제적 위기를 더 심화시킬 기존의 성장 방식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의 깊게 보면 보수 언론은 이런 국정 기조는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의 비판은 정권의 도덕성에 맞추어져 있다.

진짜 문제는 현 정부의 국정 방향에 대해 민주당과 진보·개혁 진영의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행적이라는 비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꾼다면, 사회·경제적 위기를 심화시키는 기존의 성장 방식과 조응하는 약자복지를 대신할 대안적 성장 방식과 이에 조응하는 복지 정책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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