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인질 4명 구출하려 274명 살해···‘대량학살' 논란 재점화
한낮 주택가·주민 무차별 폭격
어린이도 사망자에 대거 포함
하마스 "잔혹한 민간인 학살"
서방서도 "강력 규탄" 목소리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억류된 자국민 4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이 900명 넘게 목숨을 잃거나 다치면서 ‘대량 학살’ 논란이 일고 있다. 아랍권은 물론 서방국가들까지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폭격에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만 연립 정부 붕괴 위기에 몰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는 이번 인질 구출 작전의 성공이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기회로 작용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로이터통신은 9일 가자지구 보건부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서 최소 274명이 숨지고 698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어린이들 역시 사망자에 대거 포함됐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여름 씨앗들’로 명명된 인질 구출 작전에 돌입해 한낮의 주택가를 폭격했다. 한 생존자는 로이터통신에 “이스라엘의 드론과 전투기가 민간 주택과 도망치는 주민들을 향해 무작위로 포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이스라엘 측은 인질 구출 작전의 성공을 자축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이번 임무는 정확한 정보에 기반했다”며 “인질에게 접근하기 위해 민간 지역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이어 “100명 미만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안다”며 “그중 테러범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역시 “우리 전사들의 영웅적인 작전으로 억류됐던 인질 4명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고 치하했다. 인질들은 이스라엘 병원으로 호송됐으며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잔혹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지도자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우리의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오산”이라며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어떤 협상안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은 이번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촉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하마스는 미국의 체포·추방, 자산 동결 등 각종 제재 압박에도 휴전 협상안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로이터는 “휴전을 대가로 인질을 모두 석방하려는 미국과 중재국들의 시도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 진영에서도 인질 석방을 환영하는 입장과 대규모 민간 학살에 대한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질 4명의 귀환을 축하하며 “모든 인질이 집으로 돌아가고 휴전이 이뤄질 때까지 할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가자지구에서 또다시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라며 “우리는 이를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고 비난했다. 중재국인 이집트 외무부 역시 “국제법과 국제인도법의 모든 조항과 인도주의의 모든 가치를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인질 구출 작전의 성공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렸던 네타냐후 총리가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은 전쟁 장기화에 구성원 간 갈등으로 해체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실제로 중도 성향의 베니 간츠 국민통합당 대표는 전날 연정 탈퇴를 선언할 예정이었지만 인질 구출 소식에 일정을 돌연 연기했다. 간츠 대표는 “이 업적(인질 구출)에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모든 도전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우리는 여기 남아 무엇이 최선의 방안인지를 책임감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츠 대표의 이 같은 결정이 연정 붕괴 기로에 선 네타냐후에 대한 압박을 완화시켜줬다고 블룸버그통신은 평가했다.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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