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에 '마침표' 찍은 바이든의 對中관세[윤홍우의 워싱턴24시]
'트럼프를 계승하며 트럼프를 뛰어넘는 조치'
전문가들 "美 무역정책은 이제 국가 안보 도구"
공화당 매파들 "中 봉쇄로 정권 교체 유도해야"
WTO 30년 만에 세계 무역 질서 통째로 전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전기차와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전격적인 대중(對中) 관세 인상안을 발표한 이후 워싱턴DC 내 외교 당국자 사이에서는 6년 전인 2018년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연구소 연설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 펜스 부통령은 “지금의 중국을 미국이 만들어줬는데 중국은 배은망덕하게도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니 각오하라”는 주장을 담은 연설로 베이징은 물론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그는 중국을 ‘사기꾼’이자 ‘도적떼’로 비유하기까지 했다.
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서 빌 클린턴·버락 오바마 정부로 이어온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전면 부정한 발언으로 백악관 2인자의 연설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중국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래 역사가들이 미중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을 찾는다면 펜스의 연설을 주목할 것”이라고 논평했을 정도다. 한 외교 소식통은 “돌이켜 보면 펜스의 연설 때부터 미국의 전략은 정해져 있었다”면서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트럼프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 바이든의 이번 관세 조치를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고 짚었다.
실제 공화당 매파로만 구성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초강경 대중 정책이 바이든 정부에서는 다소 완화하거나 큰 폭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 역시 2022년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탈냉전 시대는 최종적으로 끝났다”면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시대를 선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외교·군사·기술적 힘을 갖춰 가는 유일한 경쟁자”라고 규정했다.
특히 이번 대중 관세는 ‘트럼프를 계승하는 동시에 트럼프를 뛰어넘는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2018년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과한 대중 관세들은 그대로 유지됐고 여기에 더해 전기차·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 등의 분야에서 이른바 전략 관세, 폭탄 관세가 추가로 부과됐다. 바이든 정부는 해양·조선·물류업을 대상으로 301조 조사에 착수하면서 중국 선박에 대한 항만세까지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트럼프 정부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방안이다. 서로를 강하게 비방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 정책에 있어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DC의 자문회사 브런즈윅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대중 관세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의 무역정책은 이제 경제적인 도구가 아니라 국가 안보 도구로 확립됐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글로벌 자유무역을 이끈 미국의 무역정책이 180도 전환됐음을 기업들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는 조언이 행간에 담겨 있다. 보고서는 또 “이번 대중 관세는 녹색 정책과 에너지전환이 보호무역에 비해 부차적인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고도 했다. 중국과 손잡는 것이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이라 할지라도 미국은 결코 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공화당 매파들 사이에서는 현재 수준을 뛰어넘는 대중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1기 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매슈 포틴저와 마이크 갤러거 전 미국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승리(victory)’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구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하고 ‘데탕트(긴장 완화)’ 정책 대신 레이건식 봉쇄정책으로 중국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너무 과격하다는 이유로 미국 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지만 11월 대선의 유력 후보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흘려들을 수 없는 주장이다. 4년 전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의 정책을 거세게 비판했지만 지금은 더 지독하게 중국을 옥죄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30년 만에 글로벌 질서가 송두리째 바뀌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외교가의 진단을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seoulbird@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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