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국민 볼모로 역대 네번째 집단행동···환자단체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결정"

박준호 기자 2024. 6. 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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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다시 강대강 대치
공공의대 반대이후 4년 만에 파업
투표·찬성률 높지만 참여는 미지수
서울대병원도 17일부터 휴진 돌입
업무개시명령 등 정부 대응 주목
장기화땐 의사면허 취소 나설수도
임현택(왼쪽) 대한의사협회장과 의협 전현직 집행부가 9일 서울 대한의협에서 열린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가운데) 국무총리가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상목 (왼쪽 두번째)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과 의료개혁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개원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2020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전면 휴진 카드를 꺼내면서 의대 정원 증원에서 시작된 의정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의협은 2000년 의약분업 반대, 2014년 원격의료 반대, 2020년 의대 증원 및 공공의대 설립 반대에 이어 네 번째 집단행동에 돌입하게 됐다. 그 어떤 명분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볼모로 한 직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미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절차가 마무리된 상태에서 17일 전체 휴진을 결의한 서울대병원 등 대학병원에 더해 의협 회원사인 동네 병원들까지 전면 휴진이라는 집단행동에 나서기 때문이다.

다만 의료계의 집단 전면 휴진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고 과거 의료계 총파업 당시 개원의들의 참여가 저조했음을 고려하면 우려와 달리 미풍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조건 없는 복귀를 요청하면서 의협 등 의료계의 집단행동에는 원칙대로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4·10 총선 이후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던 의정이 다시 강대강 대치하면서 정부가 의료법·공정거래법 등에 따른 업무개시명령에 이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의사 면허취소 카드까지 꺼낼지 주목된다.

의협은 9일 서울 의협회관에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열고 대정부 강경 투쟁을 선언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무기한 집단 휴진에 들어가는 다음날인 18일 전체 휴진과 더불어 의사와 의대생, 학부모, 전 국민이 참여하는 총궐기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의협은 집행부와 대의원회, 전국 16개 시도 및 시군구 의사회장, 각 산하 단체에 의대 교수, 개원의, 봉직의 등 각 직역별 대표자들까지 모으며 ‘단일대오’를 과시했다. 강경 투쟁 찬반투표에서 평소 참여도를 훌쩍 넘는 63.3%의 투표율을 기록하고 이 가운데 73.5%가 집단행동 동참 의사를 밝힌 것처럼 분위기는 극도로 격앙됐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14만 의사, 2만 의대생은 더 이상의 인내를 중단한다”며 “의료계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사들이 정부·여당에 회초리를 들고 국민과 함께 의료정책을 바로잡을 결정적 전기를 마련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폭압적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며 전공의·의대생들에게 용서를 구하라”며 “의료 농단 사태 책임자들을 즉시 파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원의들이 이번 의료 공백 사태에서 처음으로 참여하는 집단행동을 두고 과거에 비춰 휴진율이 낮으리라는 전망과 의대 교수들까지 동참하기로 한 만큼 이번에는 다르다는 전망이 엇갈린다. 의협 주축인 개원의들의 경우 휴진이 곧바로 수입 감소로 이어지는 데다 동네 단골 환자들의 불만과 맞닥뜨려야 하는 만큼 병원 문을 닫기가 쉽지는 않다. 2020년 집단행동에 참여한 개원의가 한 자릿수 비율에 그쳤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다만 이번 강경 투쟁 찬반투표율이 이례적으로 높은 데다 개원의들도 후배인 전공의 문제에 대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분위기를 보임에 따라 휴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의료계 바깥의 반응은 싸늘하다. 서울대 교수회는 이날 “의료인으로서 지켜온 원칙과 노력을 수포로 돌릴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며 “다른 한쪽의 극단적 대응을 초래할 비민주적 위험성도 있다”고 호소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생명을 담보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본분을 망각한 몰염치한 결정”이라며 “정당성도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처사로 즉각 철회를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부가 의료법·공정거래법으로 의사 면허까지 취소하는 강경 대응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개원의들의 불법적 집단행동이 있으면 정부는 의료법 등에 따라 여러 필요한 조치로 대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추진 당시 의협 회장은 집단 휴진 사태를 주도했다가 공정거래법·의료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면허가 취소된 전례가 있다.

정부는 개원의들이 휴진할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자격 정지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형도 받을 수 있다. 특히 개정 의료법은 어떠한 범죄든 금고형 이상의 실형·선고유예·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업무개시명령을 어기면 의료법에 따라 면허까지 박탈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단체가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거나 각 사업자의 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할 경우 해당 단체에 10억 원 이내 과징금을, 단체장 등 개인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이 경우도 의료법상 면허취소 조항을 적용 가능하다. 또 응급의료법상 의료기관장은 종사자에게 비상 진료 체계 유지를 위한 근무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어기고 환자에 중대 불이익을 끼치면 6개월 이내 면허·자격정지 혹은 취소가 가능하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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