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한복판에 한국의 美 풀어낸 조민석의 '군도의 여백'
한국인 건축가로는 최초 참여
전통 한옥 마당에서 착안해 설계
동양적 사고로 독창적 구조 구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와 연결된 왕실 공원 켄싱턴 가든. 서펜타인 갤러리 앞마당엔 2000년부터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한시적인 구조물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들어섰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고(故) 자하 하디드를 시작으로 페터 춤토어, 대니얼 리버스킨드, 렘 쿨하스, 헤르조그 앤 드뫼롱 등이 거쳐 가면서 건축가들의 실험 무대가 됐다.
23번째인 올해 한국인 최초로 파빌리온 작가에 선정된 조민석 매스스터디 대표(57)의 ‘군도의 여백(Archipelagic Void)’이 지난 7일 공개됐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짙푸른 잔디 위에 별 하나가 뚝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중심부 원형의 열린 공간에서 각각 방사형으로 뻗어가는 다섯 개의 공간이 공원을 지나는 누구나 어디에서든 접근 가능한 장소로 만들었다.
찾는 동선에 따라 다른 경험
조 건축가는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역사를 추적해 과거와는 다른 독창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설계했다. 중앙은 한국 전통 가옥의 안뜰인 마당에서 착안했다. 중앙에서 각각의 공간을 연결해 언제 어떤 동선으로 이곳을 찾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 기억을 갖고 돌아가는 구조다. 이전까지의 파빌리온이 채워 넣는 것에 집중했다면 ‘군도의 여백’은 비워두는 것으로 동양적 사고를 풀어냈다는 평가다. 사람들이 공간에 들어와 할 수 있는 행위의 가능성을 더 열어둬 사람이 건축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한 것.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있는 켄싱턴 가든은 원래 왕실 켄싱턴궁 정원이었다가 공원으로 바뀐 런던 시민들의 휴식처다. 북쪽 공간엔 ‘읽지 않은 책의 도서관’이 들어섰다. 싱가포르 예술가인 허먼 청과 르네 스탈이 2016년부터 진행하는 예술 프로젝트 중 하나다. 누구나 조용히 독서할 수 있는 공간, 집처럼 느낄 수 있고 누구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서펜타인 갤러리 예술감독이 아이디어를 보탰다. 조 건축가는 슬라보이 지제크의 <폭력이란 무엇인가>와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등 두 권을 기증했다고.
남동쪽에는 피라미드 구조의 놀이공간이 있다. 주황색 그물로 이뤄진 이곳은 어른은 아이가 되고, 아이들은 아이처럼 뛰어놀 수 있는 미니 놀이터가 됐다. 동쪽엔 서펜타인 남쪽 건물의 기원-1934년 티하우스로 지어졌다가 1970년 갤러리가 된 역사-을 되살려 티하우스를 통합한 공간을 선보였다. 마당을 둘러싼 갤러리, 도서관, 티하우스, 놀이터, 강당 등 5개의 공간은 유기적이면서 여백이 살아 있는 현대판 한옥을 연상케 한다.
유기적이고 여백이 살아 있는 공간
이 건축물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은 음악이다. 6채널 사운드 설치 작품은 다수의 영화 음악으로 이름난 작곡가 장영규 씨가 창작했다. 켄싱턴 가든에서 녹음한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를 가야금, 거문고, 피리, 장고, 꽹과리 등 한국 전통 악기와 결합해 계절의 변화를 표현했다. 올 10월 27일까지 일반에 공개하는 파빌리온에서 여름까지는 ‘The Willow is(버들)’가, 가을 시즌부터는 ‘Moonlight(월정명)’가 흘러나온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조 건축가는 1994년 신켄치쿠 국제주거건축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고, 2000년 뉴욕 건축연맹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2004년과 2010년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비트라 미술관 순회전시 ‘오픈 하우스’, 개인전 ‘비포/애프터: 매스스터디 더즈 아키텍처’ 등 다양한 전시를 선보였다. 2014년 6월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 정부로부터 화관문화훈장 등을 받으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조 건축가의 매스스터디는 서울 마곡 스페이스K 미술관, 페이스 갤러리 서울,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 남해 사우스케이프,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과 공장 등을 설계했다. 건축가 김중업의 설계 원형을 되살린 주한 프랑스 대사관 복원 및 증축으로도 주목받았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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