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영입 통로가 된 사외이사, 제도의 본질 되돌아봐야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024. 6. 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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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막을 ‘방패’ 아닌 혁신 위해 충언하는 ‘창’ 역할 필요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기업의 의사결정 최고기구가 이사회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국내엔 적지 않다. 이사회는 기업의 중대 안건 또는 의사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기업 가치 극대화와 장기 성장을 추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적어도 교과서적 의미에서 이사회는 회사의 해산·합병 의결, 중장기 경영계획 검토, CEO 선임 및 평가·보상을 판단하고 감시하는 자리다. 교과서는 이사회가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얘기한다.

이 단순한 사실이 기업 현장에서는 180도 달라진다. 이사회에서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이 진행되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여러 요인이 섞여 있지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기업 경영진이 이사회의 건설적인 비판과 감시를 원하지 않는 경우. 둘째, 기업의 중장기 경영 전략과 계획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이들이 사외이사를 맡는 경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신규 추천된 사외이사 103명 중 검찰 출신은 8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시사저널 임준선

검사 출신 사외이사는 수사 보호막?

사외이사 제도의 현실을 확인하려면 국내 30대 그룹을 살펴보면 된다. 주요 대기업이 어떤 인물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느냐가 대한민국의 권력 지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신규로 추천된 사외이사 103명 중 41명이 전직 관료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검찰 출신은 8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기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부각되기에 검찰 출신 사외이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현 정부에서 '검사 전성시대'라는 말이 등장하자 기업이 정부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전직 검사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이를 100% 사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국내 기업은 그 이전부터 변함없이 법조인들을 영입해 왔기 때문이다. ESG 부각 이전에도 검사를 영입했다는 건 변화된 사회환경 패러다임에 적응하기보다는 기업을 향한 검찰 수사를 커버하는 보호막, 방패막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법조인을 영입하는 기업의 입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만약 기업 지배구조 개선, 윤리경영 확립을 위해 법조인의 냉철한 판단을 듣기 위함이라면 이들을 영입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직 내 지배구조와 윤리경영, 사회적 가치 실현에 목적을 뒀다면 검찰 출신을 조직의 경영 임원으로 영입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는 의사결정을 위한 거수기가 된 지 오래다.

다수의 언론에 따르면, 검찰의 특수수사를 받았던 기업들이 전직 검사를 가장 열정적으로 영입한다고 한다.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장까지 갈 필요도 없이 부장검사 경력만 지녔어도 대기업 사외이사로 거론되는 데 무리가 없다. 기업과 가장 거리를 둬야 할 법조인들이 퇴직 후 기업에 가서 충언하는 것이 아닌 단순 방패막이에 그친다면 이 또한 국가 자산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능동적 이사회는 여전히 요원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이사회에 의해 쫓겨난 것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놀랄 일이 아니다. 1992년 미국 GM의 CEO인 로버트 스템펠 역시 이사회에 의해 경질되는 등 HP, IBM, 코닥, 디즈니 등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의 CEO들이 이사회에 의해 교체됐다. 글로벌 기업의 사외이사는 CEO의 방패가 아닌 날카로운 창으로 작동하는 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글로벌 기업의 사외이사는 조직의 CEO가 건설적인 비전과 장기적인 투자, 혁신적인 사업을 전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나침반 역할에 집중하고 CEO가 정도경영의 방향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건설적인 견제와 균형에 에너지를 쏟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의 사외이사 중 80%는 전·현직 CEO다. 이른바, 선수가 현명하게 경영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실제 현장에서 선수로 뛰는 이들이 살펴봐야 한다는 게 그들의 요지다.

글로벌 기업, 전·현직 CEO 사외이사 영입

반면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중 40%는 관료, 30%는 학계라는 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 결과, 네이버가 소프트뱅크와 라인야후 합작 사업을 추진할 때 이를 적절히 판단하고 방향추 역할을 해야 할 이사회는 무기력했고, 대기업이 임원들에게 주 6일 근무 시행을 요구할 때 해당 제도가 실질적으로 혁신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사회는 검토하지 못한다. 무기력한 이사회는 혁신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2012년 세계 유수의 학술지인 금융저널(Journal of Finance)에 기업 지배구조와 외부 네트워킹이란 흥미로운 논문이 한 편 게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텍사스대와 UCLA대 연구진은 S&P 1500개 기업을 토대로 기업의 CEO와 이사진이 어떤 네트워크를 갖는지 면밀하게 살펴봤다. 연구진은 CEO와 이사회가 학교 동문인지, 골프 클럽 또는 외부 모임 회원으로 소속됐는지 등을 확인한 후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 결과는 이사회와 관련해 중요한 교훈을 학계와 기업에 줬다.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기업의 지배구조가 좋지 않을수록 그리고 CEO의 나이가 많을수록 CEO는 자기와 네트워크 강도가 강한 사람을 사외이사로 선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CEO가 자신과 가깝지만 경영 관련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앉힐수록 기업 가치, 즉 주가는 더욱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CEO에게 사외이사로 필요한 인물은 외부환경 변화와 역동성을 이해하고 CEO에게 의미 있는 통찰력을 전해줄 수 있는 인사라고 강조했다. 경영·경제·기술혁신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출할수록 거액의 인수합병이 손쉽게 진행되어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연구 결과로 확인한 글로벌 기업이 유독 전·현직 CEO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려는 이유다.

사외이사 제도가 검사 영입의 도구로 전락하는 건 그래서 문제가 있다. 윤리경영 확립을 위한 것도 아닌 수동적인 이사회 운영을 위해 검사를 거수기로 세우는 건 기업에도, 법조인에게도 손해다. 이제라도 기업들은 조직의 혁신을 위해 진짜 충언할 수 있는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확실한 환경을 타개할 수 있는 인재에게 조언을 구해야 기업도 살고 국가 경쟁력도 되살아난다. 이게 사외이사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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