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감동도 슈퍼히어로급...막방이 아쉬운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6. 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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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초능력을 통해 아픈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이야기라니

[엔터미디어=정덕현] "누나 먹는 거 보면 기분 좋아져. 나도 막 먹고 싶고..." 복동희(수현)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복귀주(장기용)는 그때 차에 치어 죽은 개에 집착해 식음을 전폐했던 자신에게 누나가 밥을 먹게 했던 순간을 기억해낸다. 복귀주는 그 기억을 되살려 누나에게 말한다. "다시 봐도 초딩때 복동희 진짜 예뻤다. 난 그때가 진짜 누나 같애. 누나 그때 오히려 더 잘 날았어. 하도 붕붕 날아다녀 가지고 내가 무슨 꿀벌인 줄 알았다니까. 몸무게가 문제가 아닌지도 몰라. 무엇보다 그때 누난 행복했어. 누나랑 있는 게 나도 행복했고."

JTBC 토일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서 비만이 되어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있는 초능력을 잃어버린 캐릭터 복동희는 아마도 최근 드라마에서 봤던 그 어떤 비만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 인물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비만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그래서 세상의 편견어린 손가락질을 받던 시절을 1,2회분으로 보여준 후 전신성형 같은 기술을 빌어 날씬한 모습으로 변모한 후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달랐다. 12부작에 10화에 이르러서야 각고의 다이어트를 위한 노력 끝에 변모한 모습을 비로소 보여주니 말이다.

그런데 살을 빼고 사랑한다 믿었던 남자 조지한(최승윤)과 결혼까지 앞두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복동희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 남자가 사랑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돈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왜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없고 누군가의 시선과 바람에 맞는 사람이어야 사랑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생겨서다. 그런 그에게 동생 복귀주가 건네는 위로는 따뜻하다. 잘 먹고 행복해 했던 어린 시절의 복동희가 너무나 예뼜다며, 날고 못날고의 문제 역시 몸무게가 아닐 지도 모른다고 말해준다.

몸무게가 늘어서 날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 생각해왔지만,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세상과 그로인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 것이 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했다는 이 복동희의 이야기는, 우리가 외모에 대해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편견과 선입견을 꼬집는다. '외모 지상주의'가 만들어내는 현대인들의 강박은 결국 어떤 바람직한 외모와 몸매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시선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건 또한 우리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 우리가 마음껏 꿈이라는 날개를 펼치고 날지 못하게 하는 건 바로 이 편견이라는 걸 복동희라는 캐릭터는 여지없이 드러낸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초능력 가족들에 대한 서사가 먹먹한 위로와 감동을 주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현실의 편견과 차별들을 이 가족에 투영해 끌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예지몽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가족을 불행으로 만든 '저주'라 생각하는 복만흠(고두심)이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 때문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려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려낸다면, 과거의 아픔에 발목이 잡혀 행복했던 시간들 대신 불행으로 그것들을 기억하고 그 속에 갇혀 살아가는 복귀주는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또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 때문에 엄마가 사고로 사망했다 여기게 되면서 그 누구의 마음도 들여다보지 않고 마음을 닫은 채 스마트폰만 쳐다보게 된 복이나(박소이)는 다름 아닌 상처받기 두려워 대인을 기피하기도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래서 이들이 잃어버린 능력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사실상 현대인들이 겪는 마음의 병들을 치유해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이 현대병에 걸린 초능력자 가족들을 평범한(어쩌면 평범 이하인) 도다해(천우희)가 바꿔나간다는 것 역시 우리가 원하는 건 이제 엄청난 부나 명예, 권력 같은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회복이 되었다는 걸 말해준다. 너무나 진짜 가족을 원했던 도다해의 그 결핍은 그래서 복귀주를 비롯해 그 초능력 가족들을 변화시킨다. 그건 저마다의 이유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심지어 초능력을 저주로 생각할 정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조금씩 회복되는 건 도다해가 그토록 원하던 '진짜 가족'에 대한 욕망이 이들에게도 잊고 있던 서로에 대한 마음을 되찾아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복귀주는 드디어 복이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이고, 복이나 역시 아빠의 진심을 읽어낸 후 변화한다. 투명인간처럼 살았던 그는 춤을 추며 자신을 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진다. 도다해는 복만흠의 꿈이 전부는 아닐 수 있고 그래서 그 불안이 오히려 불행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는 말한다. 복동희는 조지한의 불륜 사실을 도다해와 그레이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목격한 후,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일 뿐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드디어 그 날 수 있는 능력으로 그레이스를 살려낸다. 또 도다해를 내세워 사기를 쳐왔던 백일홍(김금순)과 그레이스(류아벨), 노형태(최광록) 역시 그간 도다해와 쌓인 유사가족 같은 정 앞에서 변화한다.

초능력을 통해 아픈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이야기.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그 독특한 설정을 하나하나 쌓음으로써 위로와 감동 또한 증폭시켰다. 그래서일까. 드디어 이 초능력 가족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 시점에서 어느새 마주하게 된 마지막 방송이 아쉽게 느껴진다. 비록 짧은 여정의 드라마였지만 시청자들은 많은 위로와 공감을 얻지 않았을까. 그만큼 비뚤어진 욕망 속에서 편견과 차별이 가득한 세상 속에 우리들 역시 아프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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