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약속 안 지킨 日…사도광산 외교 시험대 오른 韓
다음달 21일부터 31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진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등재 여부를 놓고 한일 간 치열한 외교전이 시작됐다. 사도광산을 ‘제2의 군함도(하시마)’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일본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을지 한국 정부의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지난 6일 사도광산에 대해 “세계유산 목록으로 고려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서도 ‘보류’(일본 내 용어로는 정보 조회)를 권고했다. 이코모스의 권고는 세계유산위원회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이 17세기 세계 최대 금 산출량을 자랑하며 금의 채취에서 정련까지 수작업으로 진행된 유례없는 광산이라며 세계유산에 추천했고 이코모스는 이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과거 침략 역사를 지우기 위해 사도광산을 에도 시대(1603~1867년)에 한해서만 추천했다.
이코모스의 사도광산 평가보고서를 보면 일본 정부의 이러한 꼼수를 정확히 겨냥했다. 이코모스는 권고 사항에서 “광업·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를 통한 추천 자산에 관한 전체 이력과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설명·전시 전략과 시설·정비 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한국 정부가 요구해온 대로 태평양전쟁 시기 전쟁 물자 확보처로 활용됐고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열악한 환경과 임금조차 주지 않은 채 일을 시켰다는 내용을 알려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이코모스가 권고한 대로 보완한 다음 사도광산을 다음달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반드시 등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이코모스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지적한 사항만 보완하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등 21개 위원국이 참여하는 세계유산위원회는 만장일치 결정이 관례지만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등재가 가능하다. 게다가 최근 세계유산위 회원국 사이에서는 자국의 유산 등재를 위해 다른 나라의 등재를 크게 막지 않는 ‘정치·전략적 결정’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이코모스의 ‘보류’ 권고안을 받은 6건이 모두 보완 과정을 거쳐 그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력이 있다.
다만 일본 정부로서도 이코모스의 권고를 무시할 수 없고 사도광산에 대한 보완 시 강제 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특히 일본 정부는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시 관련 약속을 지키지 않아 세계유산위원회에 찍힌 전력이 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피해자를 기리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2020년 만들어진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산업유산 정보센터’는 조선인 강제동원을 알리기는커녕 한국이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며 왜곡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2021년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센터 개선을 촉구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 점을 파고들어 일본 정부를 압박할 필요성이 크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전례를 보면 실제 표결까지 가서 등재가 이뤄진 일은 거의 없다. 한국 정부가 끝까지 반대해 표결까지 가게 되면 일본 정부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면서도 “일본이 이행을 안 한 전력이 있으니 (권고를) 이행할 거라고 막연히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대한 일본이 약속을 지킬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만약 정부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으면 “(등재를) 반대해야 할 것”이라며 투표까지 넘어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도쿄 김진아 특파원·서울 허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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