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를 문화의 멜팅 팟으로”...송제용 대표의 소신
"재단이 바빠야 구민이 즐겁죠."
송제용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 한 마디로 바쁜 5월을 보낸 소감을 갈음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휴일도 많고,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기념일도 많다. 정작 송 대표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주말과 주중 구분없이 일했다. 마포구의 예술행정 책임자로서 구민의 5월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잰걸음이었다.
마포문화재단은 5월 내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연과 볼거리로 무장한 ‘해피메이 와글와글’을 진행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절정인 시절 부임 후 송 대표는 마스크와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된 올해 5월은 남달랐다. 어떠한 제약없이 오롯이 구민 행사에 몰두할 수 있는 첫 기회였다. 그래서 더 새롭고, 더 많은 이벤트를 마련했다. "큰 숙제를 마친 것 같다"는 송 대표를 최근 서울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문화 트렌드는 수시로 바뀝니다. 그러니 작년, 재작년 공연이나 행사를 다시 올릴 수는 없어요. 올 5월에는 더욱 새롭게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했죠. 재단이 바빠질수록 구민은 즐거워지니, 제 가족들에는 조금 미안하지만 5월에 더 공을 들일 수밖에요. ‘문화를 즐기려면 돈이 든다’는 선입견도 있습니다. 그런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라고 문화재단이 있는 거죠. 마포구에서는 돈이 없어 문화예술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없도록 만드는 게 여전히 제 목표입니다."
그래서 송 대표는 오늘도 걷는다. 그가 끊임없이 걷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건강이다. 그런데 건강을 지키고 싶은 이유가 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다. 배움에 끝이 없다고 하듯, 문화는 시대 별로 제멋대로 춤추며 번성한다. 그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왕성한 체력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걸으며 보기 위해서다. 그는 지역구를 대표하는 재단을 맡고 있다. 문화는 항상 지역색과 어우러지며 제멋을 갖게 된다. 서울이라고 다 같은 서울이 아니다. 마포에 어울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구민을 만족시키고, 더 나아가 다른 지역민들도 끌어들일 수 있다. 차를 타고 지나치듯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그래서 송 대표는 걷는다. 거리를 직접 밟으며 거닐면 놓치고 있던 것들이 비로소 보인다. 통상 지방자치단체장이 교체될 때마다 바뀐다는 지역문화재단 대표 자리를 송 대표가 연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송대표는 강과 닿고 사방이 연결돼 사통팔달의 위치에 놓인 마포를 문화의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재단에 처음왔을 때부터 제 모토는 요차불피(樂此不彼)였습니다. 후한서 광무제 하편에 나오는 말로 ‘좋아서 하는 일은 지치지 않는다’는 뜻이죠. 주말에 공연을 즐기는 분들이 많으니 주말에도 센터에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공연장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어요. 그 재미로 일하죠. 센터 직원들도 주말 반납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제가 어찌 즐겁지 않게 일할 수 있을까요?"
송 대표가 ‘공연장 돌아가는 모습’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 이유가 있다. 그가 처음 재단에 부임한 2020년은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다. 준비하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하지만 우울의 시대, 문화재단의 대표로서 손놓고 있을 수 없었다. 온라인으로 전환한 ‘M클래식 축제’는 마포를 대표하는 축제가 됐다. 팬데믹을 넘기 위해 공연장 입구에 QR코드 출입 인증 기기를 두고 처음으로 오프라인 공연을 시도한 것도 마포문화재단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남들이 위기라 할 째 앞으로 무엇을 할 지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코로나19 시기라고 손놓고 있을 순 없었죠. ‘포스트 코로나19’를 준비하기 위해 공연장 리모델링에 들어가고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습니다. 마포의 좋은 경치를 널리 알리고 싶어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 최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해 온라인 오케스트라 공연을 열어 4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달성했고, 2020 서울시 자치구 우수 축제로 선정됐죠.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고 하잖아요. 힘든 시기, 직원들이 뒷받침해줘서 가능했습니다."
송 대표가 첫 임기 때 코로나19와 싸웠다면, 연임 때는 그 당시 뿌린 씨앗의 결과물을 수확하고 있다. 마포아트센터가 1004석 규모로 재개관하고 , M 축제 시리즈를 하나의 브랜드로 정착시켰다. 이 외에도 서울마포음악창작소 인수, 문화예술 지역사회공헌, 스마트 마포아트센터 추진 등이 송 대표가 5대 대표로서 부임 후 일군 성과다. 그 결과 서울시 자치구 22개 문화재단 중 매출과 수익률 1,2위를 다툰다.
"팬데믹 기간 준비한 사업들이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오프라인 공연이 재개되면서 팬데믹 전과 비교해 매출이 최대 4배까지 신장됐죠. 2022년에는 공연 매출만 10억 원을 상회했어요. 물론 ‘문화 복지’가 목적이기 때문에 수익과 같은 반대급부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수익을 낸다는 것은 더 양질의 공연을 공급하고, 새로운 문화 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문화재단에서 저희에게 자문을 구하러 오죠. 의왕시장님이 마포문화재단을 ‘롤모델’이라고 언급해주셨을 때는 정말 감사하고, 또 뿌듯했습니다."
송 대표는 다양성을 추구한다. 시류에 편승에 특정 분야에 매몰되지 않는다. 클래식, 국악, 발레, 탭댄스부터 인디 뮤지션 지원사업, 소극장 연극 등 공적 자금의 도움이 필요한 분야를 깊이 들여다본다. 또한 4060 세대를 겨냥해 가수 조성모, 뱅크, 유리상자 등 1990년대를 풍미한 가수들을 한자리에 모은 ‘어떤가요’는 재단을 대표하는 브랜드 콘서트로 거듭났다. 특히 클래식은 송 대표가 가장 중점두는 문화 사업 중 하나다.
"정부나 광역 단위 재단을 제외하면 기초 단체 문화재단에서 저희처럼 클래식 공연에 집중하는 곳이 없을 거예요. 물론 개인적으로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도 이유지만, 기초 예술로서 클래식의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주민들이 이를 부담없이 즐기게 해드리는 것도 기초 예술 문화재단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팬데믹 기간, 대중에게 가장 큰 위로와 울림을 준 공연이기도 했죠. 클래식이 가진 가치는 팬데믹 기간에 오히려 더 돋보였습니다.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데, 모차르트 시대에는 클래식이 대중음악 아니었을까요? 방탄소년단도 50년, 100년 후에는 고전 클래식으로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주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죠."
송 대표는 연임 사장으로서 마지막 1년을 시작했다. 그동안 뿌린 씨앗이 꽃을 피우고, 또 다른 씨앗을 틔울 수 있도록 지력을 다지는 과정이다. 송 대표는 "흔적을 남겨 두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쌓은 업적과 족적을 남기자는 뜻이 아니다. 다음 마포문화재단을 맡은 이들이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단단한 계단을 하나 더 놓자는 취지다. 지역과 융화된 문화 사업을 정착시켜 마포를 ‘문화 멜팅 팟’의 완성 단계로 가게 하기 위한 또 다른 걸음이다. 송 대표는 ‘보편적 문화 접근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저같이 문화 행정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100년, 1000년 일할 수는 없죠. 후임자가 기존 사업을 이어가며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질서있는 교체도 중요하죠. 마포에서만 문화가 융성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사통팔달의 요지인 마포가 문화 중심지로서 더 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역 임은 분명합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문화산업을 추진해야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죠. 때로는 ‘가만히 두는 것’도 답이에요. 홍대에서 인디 밴드 문화가 번성한 것은 지자체가 잘 도와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이죠. 자연발생적인 문화를 인정하고, 젊은 사람들을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반면 클래식, 국악은 스스로 지역민에게 다가가긴 어려운 영역인데요. 그래서 지자체가 먼저 움직여줘야 하죠. 그렇듯 각 문화적 특성, 지역적 특색을 고려해야 보편적 문화 접근권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역 소상공인과의 연대를 도모해야 문화를 매개로 한 공생이 가능합니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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