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은 왜 ‘대러 매파’로 변했나?

정의길 기자 2024. 6. 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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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엔 유화책 주장했지만
무기 지원 넘어 파병까지 주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일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서방 군대 파견 등 대러시아 강경책을 점점 강화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7일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 뒤 우크라이나에 군사훈련 고문단을 파견한 국가 연대를 “마무리지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월부터 서방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파병과 그 일환으로 우선 군사고문단 파견을 주장해왔다. 그는 “우크라이나 땅에서 훈련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특정 역량에는 더 실질적이다”며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서방 군대의 우크라이나 파병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전날인 6일에도 프랑스 언론과 회견에서 자국산 전투기 미라주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러시아 본토를 직접 공격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6일부터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프랑스의 대러시아 강경책에 화답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는 했으나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은 하지않았다. 러시아를 자극할 부담스러운 상황을 피하려 했다는 해석을 낳았다.

마크롱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초기에는 러시아의 “체면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고,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의 안보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면 유화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5월말 슬로바키아의 한 싱크탱크 주최 국제안보회의에서 러시아와 인접한 나토 회원국들의 우려를 충분히 경청하지 않았다며 대러시아 강경 모드로 돌아선 뒤 올해 들어서는 파병도 주장해오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국제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싸울 서방 군대의 배치를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고, 지난 3월5일 체코 프라하 연설에서는 유럽은 러시아와 대결할 때 “겁쟁이”가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서방 군대의 우크라이나 파병은 러시아가 서방 무기를 이용한 자국 영토 공격보다도 더한 ‘레드라인’으로 설정하는 사안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대러시아 강경 모드로 전환은 정적인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과의 경쟁이 작용했다. 르펜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프랑스의 개입에 소극적이고,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푸틴에 대한 ‘지지냐 반대냐’를 물으며, 르펜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비비시(BBC)와 텔레그래프 등은 전했다.

유럽 안보의 주도권에 대한 프랑스의 전통적인 주장도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유럽 안보 구도에서 유럽의 독자성 및 이와 관련한 자국의 주도권을 주장해 왔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프랑스의 독자적 핵 개발을 추진했다. 마크롱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 때 유럽연합 독자방위군 창설을 제안하는 등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유럽의 전략적 자율에 대한 비전을 강조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미국에 맞서 협상론을 주장하던 마크롱은 이제 전쟁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유럽 스스로 방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이 모순되지 않은 행보라는 지적이다. 특히, 올해 미국 대선에서 나토에 회의적인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 전쟁에서 유럽의 주도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파병론은 또 이에 동의하는 동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받아서 유럽 안보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이기도 하다.

독일과의 경쟁도 작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은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무기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유럽연합 전역의 미사일 방어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주도적인 군사 강국이라는 프랑스의 지위에 대한 잠식이다. 마크롱의 측근은 텔레그래프에 “독일은 유럽의 경제적 지도자이고, 프랑스는 전략적 지도자라는 두 나라 관계의 기초를 독일이 깨고 있다”고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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