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대북확성기 재개…'北 감내 힘든 조치' 시작됐다
오늘 대북확성기 방송 실시…대통령실 "北주민에 희망의 소식"
정부가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 우리 측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도발을 또 다시 자행하자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통해 사전 준비를 마쳐놓은 대북 확성기 재개 등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를 즉각 실시하는 수순이다.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무력 충돌 등 돌발 상황도 우려되지만 정부는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안보실은 9일 오전 10시30분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개최해 북한의 오물 풍선 재살포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밤 "북한이 오물풍선을 다시 부양하고 있다"며 "국민들께서는 적재물 낙하에 주의하시고 떨어진 풍선을 발견하시면 접촉하지 말라.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해주시기 바란다"고 알렸다. 우리 군은 북한 측이 이날 오전까지 약 330여개의 오물풍선을 띄운 것으로 파악했다. 이번 북한 오물풍선은 서풍계열 바람의 영향으로 주로 경기 북부와 서울, 강원북부에서 관측됐고 80여개가 낙하해 군경이 회수에 나섰다.
회의 참석자들은 지난 5월31일 정부 입장을 통해 예고한 대로 상응 조치들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감내하기 힘든 조치'를 예고했다. 국가안보실은 이날 "우리가 취하는 조치들은 북한 정권에게는 감내하기 힘들지라도 북한의 군과 주민들에게는 빛과 희망의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며 "오늘 중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고 방송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북한은 한일중 정상회의 등에 불만을 품고 지난달 말 오물풍선을 날려보내는 도발을 시작한 뒤 이달 2일까지 약 1000개가 넘는 오물풍선을 살포했다.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을 시사하는 '감내하기 힘든 조치'를 경고하자 북한 당국은 잠정 중단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정부는 북한이 또 다시 도발하면 언제든 맞대응할 수 있도록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해놨다. 이달 3일 국가안보실은 김태효 NSC 사무처장 주재로 NSC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결정했다. 이어 4일 국무회의에서 해당 안건이 의결됐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곧바로 재가했다. 9·19 군사합의 효력이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대북 확성기 방송도, 군사분계선 일대의 대규모 군사훈련 등도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해 11월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하는 등 도발을 계속하자 우리 정부는 9·19 군사합의에서 비행금지구역과 관련한 '1조 3항'의 효력을 정지하고 공중 감시 정찰 활동을 복원했다. 그러자 북한은 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올해 초에는 해상 완충구역에서 350여발의 포사격을 진행하면서 군사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측의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 후 불과 5일 만에 대북 방송이 재개됨으로써 남북한 모두 군사합의에 구속받지 않는 상태다. 북한은 탈북자단체, 북한인권단체 등이 이달 6~7일 등에 대북전단을 연이어 뿌리자 이를 빌미로 재차 오물풍선 도발을 시작했고 남북은 사실상 9·19 군사합의 이전 상황으로 완전히 돌아가게 됐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이날 "북한이 명백하게 대한민국 사회를 혼란시키고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이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 이상 정부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며 "특히 오물풍선에 담긴 내용물이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국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타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도 당연히 강력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실은 이날 "앞으로 남북 간 긴장고조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측에 달려있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며 "정부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고하고 빈틈없는 대비태세를 유지할 것이며 우리 국민 안전과 국가 안보에 만전을 기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조치는 북한의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일관된 입장에 따른 대응이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면서 대화의 문은 열어놓되 상대방의 선의에 의지하는 '굴종적 평화'는 거부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4일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개회사에서도 직접적으로 북한을 규탄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은 작년 5월부터 지난주 초에 걸쳐 군사정찰위성을 네 차례 발사한 데 이어 각종 미사일 발사 시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최근 며칠 사이에는 오물을 실은 풍선을 잇따라 우리나라에 날려 보내는 등 지극히 비상식적인 도발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도 "북한 정권은 역사의 진보를 거부하고 퇴행의 길을 걸으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며 "서해상 포 사격과 미사일 발사에 이어 최근에는 정상적 나라라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비열한 방식의 도발까지 감행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는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신원식 국방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김태효 NSC 사무처장,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 왕윤종 국가안보실 3차장 등이 참석했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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