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다닐래요"…줄이탈에 초비상 걸린 KAIST·과학고 [강경주의 IT카페]
KAIST·과학고 떠나는 학생들…과학 인재 씨가 마른다
KAIST, 최근 5년 간 중도 탈락 학생 576명
4년간 총 303명이 영재학교·과학고 떠나
고연봉 보장되는 의대 선호 현상 두드러져
KAIST에서 자퇴와 미복학 등으로 중도 탈락 학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과 과학자 우대 풍토 상실 등이 이같은 문제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 정부가 과학자 중심의 국가 어젠다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진학 위해 KAIST 이탈했을 것"
9일 KAIST에 따르면 지난해 중도 탈락 학생은 130명으로 2022년 125명보다 도리어 5명 증가했다. 2019년 76명, 2020년 145명, 2021년 100명까지 합치면 최근 5년 간 중도 탈락 학생은 무려 576명에 이른다. 과학계에선 이들 상당수가 의대 진학을 위해 이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이미 진행이 되고 있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2학년도에는 KAIST, GIST(광주과학기술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 4개 이공계특성화대학에서 268명의 중도이탈이 나왔다. 이는 2021년(187명)보다 43.3%(81명) 늘어난 규모다. 상당수는 의대 진학을 위해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올해 대규모 의대 정원 증원 영향으로 이같은 경향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과학고와 영재고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공계 특성화대학 학생들의 반수 고민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KAIST의 경우 신입생의 출신 고등학교를 유형별로 보면 2023년 기준 과학고가 53%로 가장 많고, 영재고가 19.5%를 차지했다. 나머지 27.5%는 공·사립 자율고를 포함한 일반고 학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공계특성화대학의 과학고 출신 학생들은 이미 수학, 영어, 과학탐구 준비가 고등학교 때 끝났다"며 "사실상 수능 국어만 따로 공부하면 의대 준비를 할 수 있어 일반고에 비해 준비가 수월해 이탈자가 많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영재학교와 과학고 이탈 상황도 심각
KAIST 뿐만 아니라 영재학교와 과학고 이탈 상황도 심각하다. 학교 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7개 영재학교(한국과학영재학교 제외)에서 전출하거나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총 60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국 20개 과학고의 전출·학업 중단 학생 수는 243명으로 집계됐다. 4년간 총 303명이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떠난 셈이다.
연도별로 보면 영재학교·과학고를 떠난 학생 수는 2020년 79명, 2021년 83명, 2022년 75명, 2023년 66명으로 꾸준히 발생했다. 영재학교·과학고를 떠난 학생은 과거보다 늘어나는 추세다. 직전 4년인 2016~2019년 영재학교와 과학고를 떠난 학생은 220명으로, 최근 4년 수치보다 37.8% 적었다.
영재학교·과학고를 다니다 그만둔 학생이 늘어난 것은 재학생에게 의대 진학 불이익이 강화된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영재학교·과학고는 졸업 후 의대 진학 학생에 대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불이익을 강화해왔다. 2018년 일부 영재학교는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회수하고, 추천서를 작성하지 않는 불이익을 줬다.
2022학년도에는 이 조치가 강화돼 전국 영재학교와 과학고 입학생은 의대 진학 제재 방안에 동의한다고 서약해야만 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의약학 계열 진학을 희망하면 진로·진학 지도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의대에 진학하려는 영재학교 학생은 교육비와 장학금을 반납하는 한편 일반고 전출을 권고받고, 학교생활기록부에도 학교 밖 교육·연구 활동을 기재할 수 없도록 했다.
의약학 계열에 진학하려면 영재학교 출신의 장점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과학고 역시 의대에 진학하면 졸업 때 수상이나 장학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의 조치를 감수해야 한다. 때문에 과감히 학교를 자퇴하고 조기에 의대 준비에 돌입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성과 낸 과학자에게 확실한 보상 해줘야"
과학 인재가 줄어든 이유는 고연봉이 보장되는 의대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 데다 지난해 연구개발(R&D) 삭감 여파 등 과학자 우대 풍토, 혜택 등 사라져서다. KAIST가 '과학강국 한국'을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연구를 해왔다는 명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과학계 현장에 사기가 많이 꺾였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KAIST를 비롯해 한국 과학계가 많은 성과를 거뒀는데 국가 지원이 늘기는 커녕 도리어 일괄 삭감돼 허탈하다"며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 뼈아프다"고 꼬집었다. 성과를 낸 과학자와 연구팀에는 확실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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