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멈추기 위한 ‘올바른 말’ [세계의 창]

한겨레 2024. 6. 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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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22일 한 팔레스타인 남성과 어린이들이 무너진 건물 안에 함께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소설 ‘악마의 시’의 작가 살만 루슈디는 5월20일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된다면 그것은 하마스가 다스리는 “탈레반과 같은” 정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진보적인 이들이 “파시스트 테러 단체”인 하마스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도 했다.

나는 루슈디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탈레반이 어떻게 집권했던가. 과거 아프가니스탄은 비교적 근대화에 열려 있던 국가였다. 그러다 공산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소련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미국과 파키스탄이 소련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저항 세력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 된 것이다. 즉, 비교적 평화롭고 다원주의적이었던 아프가니스탄을 근본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이끈 것은 소련, 파키스탄, 미국과 같은 외국의 개입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의 폭력적인 저항에 동조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이 펼치고 있는 정책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 정치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인종 청소와 영토 확장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하마스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군사적 테러를 멈추고, 팔레스타인을 국제법과 규칙을 따르는 합법적 정치 세력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저지르는 행위를 반인도적 범죄로 규탄하는 일이다.

다행히 최근 스페인, 아일랜드, 노르웨이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5월20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프랑스와 벨기에가 이를 지지했다. 놀랍지 않게도,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국제형사재판소를 제재하겠다고 위협하고,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이스라엘에 그런 짓을 한다면 그다음은 미국 차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잘 말했다. 이전에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나라들만 건드렸다면, 이제는 “법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전세계에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할 때다.

5월24일에는 유엔 최고 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남단 라파흐에 대한 공격을 즉시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 판결은 강제력이 없다. 이를 두고 냉소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이런 행위가 공허할 뿐 아니라 전장 상황에도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렇지 않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과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에 친이스라엘 세력이 크게 당황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형식적인 몸짓이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르트르는 “권력이 진실을 말하는 것을 유용하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더 나은 거짓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진실은 공식적인 입에서 나오는 순간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는 거짓이 된다”고 썼다. 서방 국가들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폭력에 대해 말로는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이스라엘에 계속해서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 그런 예다.

하지만 거짓이 되지 않는 진실을 말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체포영장을 따르는 것이다. 엄숙한 말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지만, 우리는 모든 말이 같지는 않다는 것을, 여전히 진실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만 할 것이 아니라, 행동하라”고들 하지만 지금은 이 뻔한 말을 “잘못된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말을 해라!”로 바꿔야 할 듯하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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