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곰 ‘콩’, 버려진 여우 ‘김서방’…이들이 갈 곳은 어디?
전작 ‘동물,원’ 이어 다큐 ‘생츄어리’ 만든
왕민철 감독·김정호 수의사·김봉균 재활관리사
1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에는 정작 생크추어리(Sanctuary·야생동물 보호소)가 등장하지 않는다. 생크추어리는 ‘성역’ ‘피난처’라는 뜻의 영단어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갈 곳을 잃은 동물들의 보호소를 가리킨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돼지, 소, 말 등을 보호하는 농장동물 생크추어리가 생겨났다. 그러나 올 6월 현재, 야생동물 생크추어리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웅담 채취를 위해 가둬 기른 사육곰, 인간에게 익숙해져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너구리와 여우 그리고 동물원에서 태어나 사육장을 벗어날 수 없는 호랑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영화 ‘생츄어리’는 다치고 버려지고, 갈 곳 잃은 야생동물들을 비추며, 인간 중심 시대에 야생동물의 자리가 어디인지 모색한다.
전작 다큐멘터리 ‘동물,원’(2019년)에 이어 다시 동물원 전시동물과 야생동물의 이야기를 들고 온 왕민철 감독과 이번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세 사람을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왕 감독은 “기본적으로는 동물원이 어떻게 바뀌어야 되느냐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거의 10년째 동물원을 촬영하고 계신 것 같아요. 3일 열린 ‘생츄어리 언론시사회’에서는 이번 영화가 ‘동물,원’의 후속작이라고도 하셨는데, 어떻게 동물원에 천착하게 되신 거죠?
왕민철 “찍다 보니, 의도치 않게 계속 찍게 됐어요. (웃음) ‘동물, 원’을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촬영해서 2019년 내놨거든요. 그렇게 4년 동안 촬영하면서 맺은 관계들 속에서 또 새로운 정보를 듣게 됐어요. 최태규 ‘곰 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가 청주동물원에 입사하게 된 일이라든지,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역할이라든지. 게다가 (전작의 주요 무대가 된) 청주동물원에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변화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동물원의 역할이나 야생동물에 대해 던질 수 있는 질문이 더 많겠다고 생각했어요.”
‘생츄어리’는 야생동물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세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장애를 입거나 순치(야생동물이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것) 되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토종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김정호 팀장, 동물원을 생크추어리로 전환시키고 싶어 청주동물원 공무원이 된 최태규 활동가, ‘야생동물 119구조대’처럼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고 있는 김봉균 재활관리사가 바로 그들이다.
-이번 영화는 안락사에 대해 밀도 있는 고민을 담고 있어요. 영화에서는 반달곰 ‘반순이’와 영구 장애를 입은 수리부엉이 사례가 등장하죠. 안락사를 주요 주제로 삼은 이유가 있으셨나요?
왕민철 “동물원에서 의외로 많은 동물들이 죽는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 사회는 그 죽음을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죠. 두 경우를 봤을 때, 제가 든 생각은 국내에는 안락사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시스템이 부재하니까 안락사의 결정과 책임이 자꾸 개인에게 집중되고요. 안락사는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는 적극적인 의료 행위인데, 시스템이 부재하니 개인이 쉽사리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는 거죠.”
영화에서는 날개깃에 장애를 입어 다시는 날 수 없는 수리부엉이가 결국 안락사된다. 안락사를 진행하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은 “우리도 생츄어리 있었으면 좋겠다”고 낮게 읊조린다.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가요?
김봉균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안락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어요. 일단 구조되는 동물의 상당수가 중중 외상을 입었거든요. 사람이 대형 교통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오는 것처럼 (동물도) 대부분 피칠갑을 하고 와요. ‘펄펄 끓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느니 우리에게 와서 (안락사를 해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져요.”
김정호 “사실 기존 동물원들은 안락사를 거의 하지 않아요. 아프거나 나이 들어 삶의 질이 떨어져도 방치하면 ‘자연사’로 표기되거든요. 그리고 야생동물 의료는 개·고양이 등 소동물 의학 수준보다 훨씬 발달이 안 되어 있어요. (동물원 진료) 수의사 입장에서는 안락사 이전에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살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계속 고민하게 되는 지점은 있어요.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죠.”
-그럼 생크추어리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요?
왕민철 “영화에서도 그렇고, 일반적인 담론에서도 생크추어리는 어떤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생크추어리가 그저 하나의 작은 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는 정말 조그마한 농장 하나를 고슴도치 생크추어리로 만든 곳도 있어요. 중요한 건 사육곰 농장의 곰들처럼 당장 갈 곳이 없는 동물들이 있고,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겁니다.”
김정호 “대부분의 지자체가 공영동물원과 지역 야생동물 구조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공영동물원이 국외 야생동물을 수입하거나 번식시킬 게 아니라 여러 이유로 더 이상 야생에서 살 수 없는 동물들을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데려와 보호하는 것도 좋은 방안 같아요.”
이들이 공통적으로 긴급한 상황으로 꼽은 것은 사육곰 문제였다. 지난 2022년 환경부는 국내 농장의 곰 사육과 웅담 판매를 2026년까지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전국 농장 18곳에는 280여 마리 사육곰이 남아있지만, 정부가 짓고 있는 전남 구례군과 충남 서천군의 보호시설의 수용 규모는 절반 수준에 그친다. 2020~2022년 촬영된 영화에서는 ‘사육곰 400마리가 살고 있다’고 나오는데, 그새 120마리가 죽었다. 김봉균 재활관리사는 “속죄의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호 팀장님은 영화에서 “청주동물원이 생츄어리는 안될 것 같다. 동물원과 생츄어리 중간쯤 있는 것 같다”고도 하셨어요. 그럼 동물원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김정호 “저는 생크추어리와 동물원의 가장 큰 차이점을 관람객을 받느냐 안 받느냐로 생각했어요. 시립동물원을 시민에게 개방을 안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 같아요. 대신, 청주동물원을 찾는 시민이 한 해 30만 명 정도예요. 이분들에게 사자 ‘바람이’ 같은 구조동물의 사연을 들려주고 동물복지, 동물권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에 앞장서는 거죠. 생크추어리에 도움이 되는 동물원이 되고 싶어요.”
이들이 이토록 야생동물과 동물원 동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뭘까. 왕민철 감독은 2021년 10월 경기 여주시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아기 반달곰 ‘킹’과 ‘콩’을 구조하던 날을 떠올렸다. “사육곰이 100마리나 있었는데, 배수로가 엉망이라 오물과 빗물이 섞인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어요. 거기서 새끼 곰들을 데리고 나올 때 맡았던 냄새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청주까지 따라온 그 냄새를 잊기 위해 왕 감독과 김정호 팀장은 그날 밤 소주잔을 기울였단다.
그런데 그때 구조된 두 마리가 이제는 더 나은 환경인 청주동물원에서 낮잠을 청하고 서로 장난치며 잘 산다고 한다. 사람에게 키워지다 버려진 여우 ‘김서방’, 앞다리를 잃은 고라니도 마찬가지다. 왕민철 감독은 영화 제목이 ‘생츄어리’이면서 정작 생크추어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결국 이 영화는 생크추어리를 만들고자 하는 청주동물원, 그리고 동물원 역할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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