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45살, 부모집 살면서 용돈 받는다”...방구석 독신 ‘애저씨’ 급증, 日 골머리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6. 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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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연합뉴스]
일본 가나가와현에 사는 A씨의 방에는 만화와 피규어 등으로 가득하다. 올해 만 45살인 그는 70대 아버지에게 얹혀 살며 매달 3만엔(약 26만원) 가량의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유일한 수입원인 게임 제작 대금 수입이 월 2만 엔(약 18만 원) 수준이라 도저히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년전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세탁 정도는 스스로 하게 됐지만, 식사는 여전히 아버지나 동생이 사다주는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다.
일본에서 수년 전 부터 A씨처럼 중년의 나이에도 독립하지 않은 채, 고령인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바로 ‘코도모베야오지상(子供部屋おじさん)’이란 단어로, 줄여서 ‘코도 오지’(こどおじ)라고도 한다.

한국말로 치자면 ‘아이’와 ‘아저씨’를 합성한 ‘애저씨’, 즉 ‘중년 어린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주로 마흔이 훌쩍 넘었는데도 부모 집에 얹혀살며 학창 시절 쓰던 방에서 생활하는 미혼 남성을 가리킨다. 같은 조건의 여성을 일컫는 ‘코도모베야오바상(子供部屋おばさん)’이란 말도 있지만, 전자가 수적으로 많기 때문인지 압도적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지난 2020년 일본 테레비아사히 방송은 ‘코도 오지’에 대한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사진=유튜브 캡처]
A씨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아버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드셔서, 계속 일할 순 없을 것이다. 나중에 (지원 없이) 혼자서 산다면 지금 상태로는 돈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있다”라고 말했다. 코도오지 생활을 계속하게된 이유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당연히 계속 이렇게 생활하고 있는 느낌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부모집을 나가려고 생각한 적이 없고, 부모에게서 재촉받은 적도 없다”고 답했다.

사실 일본에서 부모와 함께 살며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중장년층이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이다. 2016년 총무성 집계결과, 부모집에 얹혀사는 만 35세~54세 사이 독신 남녀 숫자는 446만명으로 조사됐다. 8년 이상 지난 지금은 이보다 숫자가 훨씬 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 중에서는 제대로 된 직업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자립할 여건이 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오기노 타츠시 시즈오카대 사회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은 “그런 이들도 독립하지 않는건 결국 경제적 이유 때문임이 여러 조사로 밝혀졌다”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 일본언론들도 계속 우려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이런 사례는 80대 노부모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50대 미혼 자녀를 부양하면서 생기는 소위 ‘8050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8050 문제’ 관련 사건·사고들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 40대 미혼 4~50%는 캥거루족…新캥거루족도 급증
챗 GPT가 40대 캥거루족을 형상화한 이미지.
한국에서 일본의 ‘코도 오지’에 상응하는 말은 ‘캥거루족’이다. 2021년 통계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30대 미혼 인구 중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은 절반이 넘는 약 55%였다. 40대 초반 미혼 인구에서도 캥거루족은 44%가 넘었다. 조사 대상 중 캥거루족은 42% 이상이 무직이어서 1인 가구(취업자 비율 75%)에 비해 경제적 자립도가 훨씬 낮게 나타났다.

통계청은 캥거루족이 급증하는 배경으로 청년층 취업난에 주택 부담 증가로 3·40대가 돼서도 부모로부터 경제·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직장이 있고 결혼을 했는데도 주거비와 자녀 양육 문제 등으로 생겨난 ‘신캥거루족’도 나날이 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가구 형태가 현실적 판단의 결과일 뿐 굳이 문제시할 게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최근 미국 NBC뉴스는 한국의 3040 캥거루족 현상을 다루며 “일부는 나이 든 부모를 더 쉽게 봉양하고 미래를 위해 돈을 절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식이 직장과 독립할 능력을 갖춘 상황이라면 과거 대가족 형태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통적 대가족은 부모가 기혼 자녀를 데리고 사는 게 아닌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형식으로, 흔히 언급되는 캥거루족 가구와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부모의 여건이 안 되거나 자식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日 ‘8050’ 문제에 ‘동거 고독사’까지 심각
지난 2019년 히키코모리인 44살 아들로부터 폭력등 위협에 시달리다 아들을 살해해 체포된 전직 농림성 차관 구마자와 히데아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9년 일본에서 전직 최고위급 공무원이 마흔 중반의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 큰 파문이 일었다. 이로 인해 중장년 히키코모리 자녀와 고령의 부모가 겪는 일본의 ‘8050 문제’의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8050문제는 자녀와 그들의 부모가 고령화하면서 자연스레 고독사 문제로도 귀결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동거인이 있는데도 고독사하는 ‘동거 고독사’가 최근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다.

과거 고독사는 일본에서나 있는 현상으로 취급됐지만, 어느새 한국에서도 심각한 사안이 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청년 고독사까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일 부산 중구의 한 원룸형 빌라에서 20대 청년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발견 당시 숨진 지 수개월은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사진=유튜브 방송 캡처]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과 청년 실업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히키코모리 급증의 배경이었다. 현재 일본 중장년 히키코모리 중 상당수가 거품경제 붕괴후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소위 ‘취업 빙하기’ 세대다. 어찌 보면 얼어붙었던 고용환경의 희생자들이다. 졸업 이후 취직을 못해 별다른 직업 없이 전전하던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중장년 나이대로 접어들었다. 한 번 취업 시기를 놓치면 재도전이 쉽지 않던 일본 고용시장은 이런 상황을 더 부추겼다.

한국도 청년층 은둔형 외톨이 숫자가 20만~3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이 중장년층이 됐을 때 일본 8050 문제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을 거라고 예단 할 수 없다. 최근 불고 있는 비혼주의와 급격한 고령화는 향후 이 문제를 더 심화할 공산이 크다. 한국은 일본과 다를 것이라는 안이한 낙관주의 보다는 문제를 타개할 정교하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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