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교통사고 보험금을 횡령해 생활비로 썼다면[법조 새내기의 판사체험]
조카의 교통사고 보험금 7220만 원 사익 추구
재판부 피고인에게 징역 8개월 실형 선고
“부모 지적능력 떨어진 등을 악용한 범행”
“횡령금액 변제한 점은 감경요소로 볼 수 있어”
<편집자주>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양형체험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습니다. 국민이 직접 판사를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어려운 양형절차를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이에 새내기 법조기자로서 직접 선고를 해보면서 독자분들과 함께 양형 판단에 대한 개념을 알아가고자 합니다.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미국프로야구(MLB)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최근 야구 외적인 일로 언론에 보도된 적 있습니다. 바로 오타니 선수의 전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가 오타니의 돈을 횡령해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입니다. 미즈하라는 지난 4일 현지법원에서 230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위탁받은 자가 신뢰관계를 배반해 불법으로 차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경찰청에서는 주요 경제범죄로 사기죄, 횡령죄, 배임죄, 증수뢰죄, 신용경매죄 등의 발생현황을 통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중 횡령죄의 발생건수는 2011년 2만 6767건에서 2022년 6만 220건으로 11년 사이에 약 2.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요 경제범죄 중에서는 사기죄 다음으로 가장 많습니다.
형법 제355조 제1항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재판에서는 어떤 판결이 나올까요
#경찰에 따르면, 보험설계사인 A씨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조카의 교통사고 손해배상금을 대신 받아주겠다고 한 후, 보험회사로부터 조카의 보험금을 지급받아 보관하던 중 7200만 원을 횡령해 자신의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친척인 A씨가 횡령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2년이 지나서야 고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잠시 사용한 후 돌려놓을 생각이었다고 주장하는 A씨를 상대로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9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체험 프로그램에서 선택한 횡령에서 위와 같은 사례가 나왔습니다. 횡령범죄 양형기준 형량은 1억원 미만일 경우 감경이 10개월, 기본이 4월~1년 6개월, 가중이 10월~2년 6개월입니다. 이 같은 양형기준을 먼저 알아보고, 사례에서 횡령한 금액이 7200만 원인 점, 혐의를 인정한 점,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2년이 지난 뒤에야 고소를 한 점 등을 고려해 최초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택했습니다.
재판 전 형량을 선택한 후 본격적인 법정공방 과정을 찾아봤습니다. 변호인 측은 피해자인 조카가 피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작성했기때문에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변호인은 “이 사건은 친족 간의 범행으로 친고죄(범죄의 피해자 또는 기타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고발이 있어야 공소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한다”며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표시로써 고소취소가 이뤄진 만큼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검사는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합의서를 작성할 판단능력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검사는 “피해자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중등도의 정신지체가 있어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이었다”며 “피고인은 피해자 가족들이 합의에 협조적이지 않아 피해자의 상태를 악용해 합의서를 받아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검사는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피해자의 어머니는 중증 장애인이다”며 “가정 형편도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저지른 범행으로 죄질이 불량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변호인은 보험금을 받은 행위 자체가 피해자 아버지로부터 합의를 받고 한 업무 처리 과정이라고 변론했습니다.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피해금액도 모두 변제한 사실도 덧붙였습니다.
검사는 최종의견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아버지가 지적 능력이 떨어진 점을 악용해 손해배상금을 중간에 가로채고 이 중 7220만 원을 횡령했다”며 “피해자들은 재산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인 조카를 감언이설로 속여 합의서를 받아내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등 법원을 기만하는 행위까지 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반면 변호인은 “왕래가 없던 피해자 측을 찾아가 관계 회복을 하려는 중 소통 어려움이 생겼고 이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까지 생겨 범행을 저질렀다”며 “보상금을 수령한 이후에도 피해자가 장애 및 병역 면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호자 업무를 대신했고 변제를 통한 피해 회복도 했다”고 선처를 부탁했습니다.
선고를 내리기 전에 법정공방 요약본을 다시한번 살펴봤습니다. 피해자가 보상금을 제때 받지 못해 치료를 정상적으로 하지 못한 점(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 야기), 횡령한 금액을 변제한 사실(상당부분 피해 회복) 등을 양형인자로 판단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금액을 모두 변제한 것이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법원은 “피고인을 징역 8월에 처한다”는 주문을 외쳤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 고모로써 피해자의 상황을 악용해 사익을 추구했다”며 “피해자 부모는 이 사건 범행 이후 고소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피해자 부모를 배제한 채 피해자로부터 합의서를 받아 공소기각을 주장해 범행 정황도 불량하다”면서도 “일부 보호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고 범죄 전력이 없으며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7220만 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해 금전적 부분도 상당부분 회복됐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변호인 측이 주장했던 공소기각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사실상 의사능력 없다고 판단해 공소기각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 판결에서는 피고인의 권고형 범위를 감경영역으로 정했습니다. 특별양형인자에 대한 평가 결과 감경인자가 1개 존재하거나 감경인가 가중인자보다 1개 많을 경우 양형기준에서 권고하는 형량범위는 감경영역으로 권고됩니다. 재판부는 7220만 원을 변제한 사실을 특별양형인자 중 감경요소(처벌불원 또는 상당 부분 피해 회복된 경우)로 봤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감경영역으로 징역 1개월~10개월 내에서 형이 정해집니다.
이번 선고에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집행유예가 아니라 실형이냐는 점이었습니다. 형법 제62조에 따르면 선고형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500만 원 이하인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습니다. 피고인은 징역 8개월을 받았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집행유예가 선고되지 않았을까요. 집행유예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참작사유가 존재합니다. 일반과 주요로 나뉘며 이중 주요참작사유가 일반보다는 중하게 고려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주요긍정사유만 2개 이상 존재하거나 주요긍정사유가 주요부정사유보다 2개 이상 많을 경우에는 집행유예를 권고합니다. 반대의 상황이 되면 실형을 선고하게 되는 겁니다. 이 피고인은 상당부분 피해가 회복된 점에서 긍정적 주요참작사유가 있습니다. 다만 이점을 제외하고는 참작사유가 없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지 못하고 실형을 받게 된 셈입니다.
임종현 기자 s4ou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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