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보다 힘든 '페트병 라벨 뜯기', 해법은
수축형 라벨이 대부분, 절취선도 무용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편집자]
멀고 험난한 재활용의 길
제가 사는 아파트는 매주 목요일이 분리수거 날입니다. 분리수거장에 가 보면 한 주에 나오는 쓰레기가 이렇게 많다는 것에 매번 놀라곤 합니다. 물론 저도 거기에 한 몫을 하고 있겠죠.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는 역시 플라스틱입니다. 주로 페트 음료 병이죠. 마시는 물은 생수 대신 정수기로 바꿨지만, 탄산수는 500㎖ 제품을 잔뜩 구매해 먹는 편입니다. 탄산수 제조기도 써 봤지만 만족스럽지 않더라구요.
분리수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다 마신 페트를 깨끗이 세척하고 라벨도 떼서 따로 버리려는데, 여기서 분리수거의 최대 난관에 봉착합니다. 이놈의 라벨이 영 마음처럼 제거되지 않는 겁니다. 요즘같은 세상이니 절취선이야 당연히 있지만 절취선대로 '토도독' 잘리는 라벨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대부분은 절취선과 무관하게 가로로 너덜너덜하게 떨어지죠.
가위로 잘라 보려고 해도 병과 어찌나 밀착해 있는지 페트에 흠집을 내면서 가위날을 밀어넣어야 겨우 잘리곤 합니다. 그 와중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또 위험하기도 하구요. 이렇게 라벨 제거가 어렵다보니 일부에서는 라벨 제거 전용 커터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빙그레에서도 지난 2020년 '분바스틱'이라는 이름으로 라벨 제거 커터를 내놓기도 했죠.
대체 왜 이놈의 라벨은 왜 이렇게 안 떨어지게 만들어서 분리수거를 하려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걸까요. 한 번에 스르륵 떨어지는 라벨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이번 주 [생활의 발견]에서는 바로 이 페트병 라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왜 안 떨어지니
우선 라벨 때문에 분리수거에 애를 먹는 사람이 진짜로 많은 걸까요? 저만 손재주가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걸까요? 한국소비자원이 투명 페트병과 분리수거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 70%가 넘는 706명이 '라벨 제거'가 가장 불편하다고 응답해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도 '페트병에 부착된 이물질 제거와 내용물 세척이 힘들다'였으니 라벨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제조사들이 라벨을 쉽게 떼라고 만든 절취선 역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조사 대상 20개 음료 중 분리 용이성에서 5점 만점에 4점 이상을 받은 제품은 단 2개뿐이었거든요. 3점대도 6개에 불과했습니다.절반 이상이 1~2점이었으니 절취선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어느 정도 확인된 셈입니다.
라벨이 잘 안 떨어지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가로로 잘게 찢어지는' 경우가 있죠. 수축식 라벨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라벨을 씌운 후 열을 가해 수축시켜서 페트병에 밀착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라벨 부착에 사용하는 점착제를 쓰지 않고 라벨을 붙이기 위한 방식인데, 열을 가해 수축할 때 라벨이 가로 방향으로 더 많이 수축하면서 문제의 '너덜너덜한 라벨'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 다음으로는 점착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우겠죠. 라벨을 뜯기 시작할 때까지는 괜찮은데, 뜯다 보면 점착제 때문에 라벨이 찢어지지 않거나, 자국이 페트에 남곤 합니다. 아예 페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뭐가 더 문제냐고 물으시면, 대답하기가 애매합니다. 수축필름은 뜯기가 너무 어렵죠. 뜯는 과정에서 손톱을 다치는 일도 종종 있구요. 너덜너덜해진 라벨을 버리는 것도 귀찮습니다. 점착제를 사용하는 방식은 재활용이 곤란합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점착식 라벨 사용이 금지돼 있고요. 일본에서는 '라벨을 떼어낸 뒤 점착제가 남아있으면 안 된다'고 명시돼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규제가 상대적으로 미비합니다.
라벨지옥 벗어나려면
수축식 라벨을 잘 뜯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업이 처음부터 '잘 떨어지게' 만들면 됩니다. 이게 뭔 소리냐구요. 예를 들어 왜 있는지 모를 라벨 절취선은 절취선의 구멍 갯수를 늘리거나 크기를 키우면 훨씬 효과가 좋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라벨 재질을 바꾸는 겁니다. 수축형 라벨은 주로 페트(PET)나 폴리스티렌(PS)으로 만드는데, PS가 상대적으로 분리가 훨씬 편하다고 합니다.
다른 방법들도 있습니다. 라벨 자체의 강도를 낮추는 방법은 덜 질기게 만들어서 손의 힘만으로도 쉽게 찢어지게 하자는 발상입니다. 지난해엔 방송인 장동민 씨가 뚜껑을 돌리면 자동으로 라벨이 떨어지는 페트병 포장 아이디어로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개최한 '2023 환경창업대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에 닿으면 점착제가 녹아 스르르 풀리는 수분리식 라벨도 일부에서 사용 중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라벨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무라벨 방식일 겁니다. 다른 음료보다 무라벨을 빨리 적용한 생수 시장은 이미 무라벨 제품 판매 비중이 40%를 넘어섰다고 하니 곧 라벨이 붙어 있는 생수를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생수가 아닌 음료들도 속속 무라벨을 적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코카콜라가 라벨을 없앤 '코카콜라 컨투어 라벨 프리'를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출시해 이슈가 됐었죠. 동아오츠카는 최근 포카리스웨트 일부 제품에 무라벨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모든 음료에서 라벨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요? 각기 다른 라벨의 디자인도 음료를 마시는 즐거움 중 하나인데 라벨이 사라지면 좀 아쉬울 것 같습니다. 라벨의 디자인도 즐기고, 친환경도 이룰 수 있는 '친환경 라벨'이 개발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이번 [생활의 발견]을 마무리해 봅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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